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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일 총리담화, 기대 낮출수록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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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화제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문제로 옮아갔다. 지난주 일본에서는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과 오카다 가쓰야 외상이 잇따라 “(병합) 100주년을 맞아 총리 담화 발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담화가 어떤 수준일지 궁금하다고 하자 한 의원이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해 무라야마 담화를 넘어서기 어려워 고민이다.”

1995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담화의 전후 과정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도쿄특파원으로 일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해 봄 일본 국회는 ‘전후 50주년 국회결의’를 먼저 추진했다. 그러자 자민당 내에서 반대론이 들끓었다. 우익 진영은 결의를 반대하는 500만 명분의 국회청원 서명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 탓에 ‘사죄’ ‘부전(不戰)’이라는 용어를 빼는 등 내용을 대폭 완화했는데도 결의문은 중의원만 간신히 통과했을 뿐 참의원에서는 끝내 거부당했다. 반쪽짜리가 된 것이다. 8월 15일의 총리 담화는 무라야마가 사회당 정치인이었기에 그나마 가능했다. ‘머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책(國策)을 그르쳐 전쟁에의 길을 걸어 국민의 존망(存亡)을 위기에 빠뜨렸으며 침략에 의해 많은 국가들, 특히 아시아 제국(諸國)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주었다…역사의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여기서 다시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표명한다….’ 담화문은 그 이전은 물론 지금까지도 가장 솔직하게 ‘침략’을 인정한 것이었다. 2005년 8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종전 60주년 담화’도 이 수준을 답습한 데 불과했다.

“무라야마 수준을 넘기 힘들다”는 민주당 국회의원의 고민에는 이유가 있다. 문제는 역시 일본 사회 전반의 보수화 풍토요, 민주당의 취약한 기반이다. 과거사 문제를 잘못 다루었다가 안 그래도 낮은 지지율이 결정타를 맞을 수 있다. 간 총리가 강제병합 100주년 담화를 발표한다면 시기는 병합조약이 체결된 8월 22일 또는 병합이 발표된 8월 29일(국치일)쯤이 될 것이다. 이때는 민주당 대표 경선(9월)이 코앞이라 간 총리도 국회의원·지방의원·당원들을 상대로 정신 없이 득표작업을 벌여야 한다(대표로 재선되지 못하면 총리직도 날아간다).

남의 나라 정치 사정을 고려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쪽에서 강제병합 100주년 담화에 대한 기대치를 아예 낮추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그나마 가장 진전됐다는 무라야마 담화 이후에 어땠는가. 담화 발표 후 두 달도 안 된 10월, 무라야마 총리가 국회에서 “한일합방조약은 적법하게 체결됐다”고 말하는 바람에 큰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무라야마를 닮은 인형이 불태워졌고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무라야마 총리의 뉴욕 정상회담이 취소됐다. 우리 국회는 ‘강제병합 무효’ 결의문을 채택했다.

개인적으로는 간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α’를 실현해 주면 좋겠다. 한일병합의 강제성·부당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조선왕실의궤 반환 등 몇 가지 상징적인 조치를 병행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본 마음에 달렸다. 일본 스스로 필요하다고, 자기들 국익에 도움 된다고 느껴서 하는 사과여야지 억지춘향은 안 된다. 사과문에 포함될 단어 몇 개를 갖고 조물락거리는 행태를 지켜보는 것도 이젠 지겹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