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제조업체들 줄줄이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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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아파트와 골프장 신축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해 난(亂)개발의 대명사로 알려진 경기도 용인시. 이 때문에 사업용지를 택지로 팔고 다른 고장으로 떠나는 중견업체들이 속출해 제조업 공동화를 걱정할 정도가 됐다.

이병성(세화 대표) 용인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러다간 용인이 수도권 대도시들의 배후 주거지로 탈바꿈해 고용이은 줄고 교통 문제만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용인 업계와 시는 최근 해묵은 지방공단 설립 문제를 다시 심도있게 거론하기 시작했다. 수도권의 교통·물류의 요지이면서도 인근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변변한 공단 하나 없었던 용인으로선 떠나려는 업체를 붙들어 두기 위한 방법이 이것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산업공동화 심각=국내 굴지의 비디오 테이프 업체인 SKM은 용인 수지 일양약품 본사 인근 1만5천평 공장의 가동을 지난달 중단하고 이달 초부터 공장이전 작업을 벌이고 있다. 새 공장터는 멀찌감치 강원도 원주시 문막 농공공단 안 1만여평에 잡았다.

공장 관계자는 "수지지역은 수도권 아파트 요지로 주민들이 공장이 있으면 아파트 값이 안 오른다며 강하게 이전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구성읍의 온도감지기 제조업체인 우진도 최근 인근 경기도 화성으로 공장을 옮겼다. 한 중견 제약업체도 공장을 팔고 다른 고장으로 떠날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업체들이 공장을 이전하는 것은 단순히 민원 압력 때문만은 아니다. 아파트 용지는 땅값이 비싸 단번에 큰 돈이 되기 때문이다. SKM의 경우 1만5천평을 6백억원에 팔고 훨씬 싼값으로 원주에 새공장을 마련했다.

수지·구성·기흥·죽전 등 주거지로 적합해 아파트 건설이 몰리는 지역의 중소업체들이 다른 고장으로 이전하려는 유혹을 많이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건설·LG건설 등 8대 주택업체의 올 하반기 수도권 분양 아파트 2만4천여가구 가운데 용인지역에만 5천4백여가구가 몰릴 정도로 아파트 용지 수요가 크다. 용인상의에 따르면 용인내 제조업체 수 비중은 2000년 64.7%에서 지난해 62.7%, 올해 61.5%로 점차 줄고 있다.

◇공단 설립 가시화=용인시는 지역 업계와 주민들의 여론을 담아 최근 시 서남쪽 남사면 일대 47만8천평의 농지·임야를 지방산업단지 개발 후보지로 정해 경기도·건설교통부에 개발승인 신청 절차를 밝고 있다. 전자·전기·신소재·정밀화학 업종 위주의 산학연구 및 첨단산업 기지로 육성한다는 게 시의 계획이다. 지역 업계도 손뼉을 치고 있다. 이병성 용인상의 회장은 지난달 신임 손학규 경기도지사를 만나 지역 중소업계의 오랜 숙원인 공단 설립에 힘을 실어 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용인에 굵직굵직한 대기업 사업장은 적잖다. 세계 굴지의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을 비롯해 대우전자·일양약품·태평양 등 전자·제약·화학 분야 생산시설이 많다. 하지만 상수원 보호 규제가 심한 한강 수계 지역이 넓어 중소기업 전용 공단 설립이 제자리 걸음을 해 왔다.

홍승일·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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