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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영화 황금기때 나루세 감독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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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일본영화를 좀 안다고 행세하는 이들도 나루세 미키오(成瀨巳喜男·1905~69)라는 이름에 이르면 멈칫하지 않을까 싶다. 설령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더라도 그의 영화를 직접 볼 기회는 흔치 않았을 것이다. 나루세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大津安二郞, 1903~63)나 미조구치 겐지(溝口建二,1898~1956)감독과 같은 세대로, 그들에 비해 밀리지 않는 작품을 내놓았음에도 일본 내에서나 바깥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한참 뒤져서 찾아왔다.

'뱀띠(巳)해에 태어난 아들'이라 해서 '미키오(巳喜男)'라는 이름을 얻은 나루세는 가난한 직물공을 아버지로 둔 탓에 일찍부터 밥벌이에 나서야 했다. 열다섯에 우연히 쇼치쿠(松竹)영화사 견습생으로 들어가 몸으로 영화를 배운 그는 1930년 '찬바라 부부'로 감독으로의 첫걸음을 뗐다. 이후 '아내여, 장미처럼'(35년)'밥'(51년) '엄마'(52년) 등 걸작들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일본영화의 황금기를 주도했다.

나루세는 자신이 성장기를 보냈던 도쿄 빈민가를 무대로 고난받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시켜 '여성영화 감독'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그의 여주인공들은 중산층의 아내나 직장 생활을 하는 활기찬 커리어 우먼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전쟁이나 교통 사고 등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식들을 키워내는 억척스러운 하층여성들에게 뜨거운 애정을 쏟았다.

그는 바람부는 대로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서민들, 특히 남편을 대신해 자식을 키워내고 자신도 지켜내야 하는 신산(辛酸)한 여성의 삶을 영화로 표현하려 애썼다.

역시 서민극 장르에 천착했던 오즈 야스지로 감독조차 생전에 자신이 결코 만들 수 없을 영화 중 하나로 '부운(浮雲·55년)'을 꼽아 나루세 감독의 영화세계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시네마테크가 주최하는 이번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에는 모두 10편이 상영된다. 오락성 높은 멜러물인 '쓰루하치 쓰루지로'(38년)를 비롯해 '밥''엄마''번개'(52년) '산의 소리'(54년)'만국'(54년)'흐르다'(56년)'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60년)'흐트러진 구름'(67년) 등이다. 장소는 서울아트시네마(아트선재센터 지하).02-3272-8707.www. cinema

thequeseoul.org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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