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8회.2-불패신화현대의 좌절>"다 망할라"… 정부,현대 계열분리 서둘러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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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0년 6월 28일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

"35개 계열사 가운데 당초 분리 예정이었던 현대차 관련 6개 사 등 모두 10개 사를 남기고, 대신 현대건설·현대중공업 등 나머지 25개 사를 분리하는 방안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청할 계획입니다."

김재수 현대 구조조정본부장의 발표가 정부와 시장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룹에서 분리한다는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모체였고, 현대건설의 대주주는 정몽헌(MH·현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기 때문이었다.

현대의 발표 직후 정부 과천청사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실.

"현대는 한달 전에 그룹 오너를 정주영 명예회장에서 MH로 바꿨습니다. 그래놓고 오너가 그룹에서 떨어져 나간다니 공정거래법에 맞지 않습니다."

공정위 간부들이 앞다퉈 현대그룹을 성토하고 있었다.

역(逆)계열분리-.

그룹의 모체와 오너가 그룹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희한한 발상은 분명 정부와 시장의 허(虛)를 찌르는 것이었다.

현대 수뇌부는 어떤 계산에서 이같은 발상을 내놓은 것일까.

이야기는 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룹 공동회장이었던 MK(정몽구 현 현대자동차 회장·정주영 명예회장의 차남)와 MH(5남)가 후계 자리를 놓고 치열한 한판 승부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왕자의 난'이었다.

당시 먼저 일을 벌인 쪽은 MK였다.

그룹 내 대북사업의 주도권을 뺏기면서 후계자 경쟁에서 뒤져 있던 MK 측의 첫번째 공격은 3월 14일, MH진영 핵심 인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겨냥한 한장의 인사발령이었다.

이익치를 현대증권 회장에서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보내고, MK의 측근인 노정익 현대캐피털 부사장을 현대증권 사장으로 임명한 것. 이익치는 정주영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가신(家臣) 중 하나였고, 현대증권은 그룹의 돈줄인 금융부문의 핵심이었다.

이 기습 인사는 내연하고 있던 MK-MH 형제간 갈등을 폭발시킨다.

MH가 장악하고 있던 그룹 구조조정본부가 MK를 그룹 공동회장에서 면직하고 이익치를 원대복귀시키는 인사조치로 역공을 가하자 MK 측이 정주영의 친필서명을 동원해 '면직조치 취소' 발표를 하는 등 진흙탕 싸움이 잇따랐다.

결국 3월 27일 아침 정주영이 87세의 노구를 이끌고 현대경영자협의회에 나와 'MH 단일회장 체제'를 지시했고, 이로써 '왕자의 난'은 MH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장자인 몽필씨 사망 이후 장남 역할을 해온 MK는 그룹 핵심에서 밀려나고 관할 영역은 자동차 부문으로 한정됐다.

'왕자의 난'은 현대에 치명적인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현대그룹의 지배구조와 불투명성이 순식간에 도마 위에 올랐다.

사태를 주시하던 경제팀은 "회사의 대표이사 선임을 개인간에 물건 주고받듯 하는 것은 구시대적 가족경영의 폐해"(이헌재 당시 재경부장관)라고 규정하고 여신회수 검토 등 살벌한 경고를 보낸다.

익명을 요구한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

"힘겹던 대우처리를 막 끝낸 시점에서 터진 왕자의 난은 정부가 다져가고 있던 기업개혁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재벌의 행태였다. 더욱이 겨우 안정되는가 싶던 시장이 그로 인해 다시 출렁이기 시작했다. 현대의 내분을 정부가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었다."

시장의 신뢰는 삽시간에 떨어졌고, 이는 자체 자금이 넉넉하지 못했던 현대의 자금 수급에 치명상을 입힌다.

급기야 5월 하순, 현대건설에도 유동성 위기가 닥쳤다.

은행들은 부도 위기를 넘겨주는 대신 현대의 지배구조를 뜯어고치겠다고 나섰다.

채권단의 공세에 시달리던 현대는 5월 31일 '정주영·MK·MH 3부자 동반 퇴진'을 전격 발표한다.

그러나 MK는 곧바로 퇴진을 거부했다.MK로선 벼랑으로 내몰린 셈이었다. 3월 '왕자의 난' 끝에 그룹 회장에서 현대자동차 회장으로 밀려났던 그에게 자동차 사업은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반면 MH는 대북사업을 위한 현대아산 이사직만 유지한 채 현대건설 회장직 등 계열사 이사직에서 퇴진했다. 외견상으로는 정주영의 결단에 승복, 거의 모든 자리를 내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실상 MH의 위상은 MK보다 막강했다. 이미 MH는 정주영의 그룹 지배권을 대폭 넘겨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3부자 퇴진 발표에 앞서 구조조정본부는 정주영의 계열사 지분을 은밀하게 정리했다.

정주영의 현대건설(11.1%)·현대중공업(4.1%)·현대상선(2.7%)지분 대부분은 MH가 대주주인 현대건설·현대상선과 MH 개인에게 넘어갔고, 정주영은 지분 매각대금으로 현대차 지분 6.8%를 확보해 현대차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그것은 불문율로 여겨져온 정주영의 후계구도를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동차 부문은 MK, 전자와 건설은 MH, 중공업은 국회의원인 정몽준이 맡기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는 것이 그룹 안팎의 관측이었다.

그러나 지분정리 결과 MH는 중공업과 자동차 부문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한 셈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MH 측은 '역계열분리'를 치고 나왔고, 이는 지분정리-3부자 퇴진으로 이어진 MH 측 공세의 완결판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발표 이틀 뒤인 6월 30일 현대가 공정위에 제출한 계열분리 신청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반려된다.

김병일 당시 공정위 사무처장(현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의 회고.

"MH의 부친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동차 지분을 3% 이하로 낮추지 않고선 계열분리를 할 수 없는데도, 현대는 鄭명예회장의 지분은 그대로 둔 채 계열분리를 신청했다. 모기업이 떨어져 나가는 역계열분리가 아니더라도 계열분리 요건 자체가 충족되지 않았다. 결국 겉으로는 계열분리를 한다면서 MH가 부친의 지분을 통해 자동차까지 장악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정부의 시각에선 현대의 역계열분리가 정부 방침을 거스르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DJ 정부의 재벌개혁 지향점이 총수 개인의 전횡을 막고 선단식 경영을 해체하는 것이었음에도 현대의 발상은 도리어 그룹 지분을 MH에게 집중시킨 채 계열사들을 계속 묶어두려는 것으로 비춰졌다. 더구나 현대발(發) 경제위기 차단에 몸이 달아 있던 경제팀에 계열분리는 절대적 과제였다.

이기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현 대통령 경제복지노동특보)의 회고.

"현대는 분리해놓지 않으면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이 모두 같이 망한다고 봤다. 계열분리는 한 계열사의 부실이 우량 계열사로 번지지 못하게 하는 방화벽이었다."

계열분리를 놓고 현대가 정부와 힘을 겨루는 동안 현대건설의 자금난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7월 말, 12개 은행장들의 현대건설 회사채·CP 전액 만기연장 결의 끝에 현대건설은 간신히 자금 위기를 넘겼다.

정부와 채권단은 대신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을 확실히 계열분리하라며 압박했다. 이익치 등 가신들의 퇴진을 공식 요구한 것도 이때였다.

익명을 요구한 채권단 관계자의 회고.

"가신들을 그대로 뒀다간 현대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와 채권단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자구노력 미흡이나 역계열분리 등도 가신들 책임이 큰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현대는 정부·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한다.

마침내 8월 6일 이용근 금감위원장에게서 최후 통첩이 나왔다.

"(현대가 확실한 자구계획을 내지 않고 미적거릴 경우) 현대건설을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로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다음날인 8월 7일 DJ는 장관급 11명을 바꾸는 대폭 개각을 단행했고, 이헌재 재경부장관과 함께 이용근 금감위원장도 경질됐다.

진념 기획예산처 장관이 재경부장관으로,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가 금감위원장으로 임명됐다.

8월 7일 오후.

DJ에게서 임명장도 받기 전 진념 재경부장관·이근영 금감위원장과 이기호 수석이 청와대 서별관 회의실에 모였다. 현대 문제 때문이었다.

진념의 회고.

"그 자리에서 '당면 문제는 현대다. 최종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따로 움직이지 말자. 일관성 있게 가자'고 정리했다. 그만큼 현대 문제는 급박했고 원칙을 지켜야 했다."

다음날인 8월 8일, 개각 후 첫 국무회의.

"새 내각이 이번주에 총력을 다해 의약분업과 현대문제 해결에 집중해 성과를 냄으로써 새 내각의 국정운영 능력을 확신시키도록 노력해주기 바랍니다."

새 경제팀의 현대 처리는 DJ의 지시로 힘이 실렸고, 현대 밀어붙이기는 급물살을 탄다.

익명을 요구한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회고.

"경제팀이 교체됐지만 시장에서 현대에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는 이상 종전과 달라질 것이 없었다. 결국 현대 처리는 전임 팀에서 만들어놓은 대로 갔다."

8월 9일 외환은행은 오너 및 가신 퇴진, 계열분리, 자구계획 보강 등 세가지 사항을 19일까지 이행하라는 공문을 보내 현대를 압박한다.

불똥은 MK에게도 튀었다. 오너 퇴진은 5월 말 3부자 퇴진 발표 후 퇴진을 거부한 MK에게 해당되는 대목이었다.

이날 오후 5시30분 김경림 외환은행장의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MK였다.

MK:내가 나가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왜 그럽니까.

김경림:언제 우리가 먼저 나가라고 했습니까. 현대가 발표했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안 지켜지니까 신뢰가 떨어지는 겁니다. 약속은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8월 13일 정부와 채권단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은 현대가 마침내 손을 들었다.

현대가 내놓은 자구계획은 정주영의 자동차 지분 매각 등 정부·채권단 요구를 전폭 수용한 것이었다.

정주영의 자동차 지분은 22일 증시에서 팔려나갔다.

당연히 현대자동차는 31일자로 현대에서 계열분리됐고, MK도 퇴진 압박에서 저절로 벗어났다.

이후 MK의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경기 회복으로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린 반면 MH의 현대는 현대투신·현대건설·현대전자 등 주력 3사가 모두 부실의 늪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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