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살기 위해 뭉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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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은행들이 바빠졌다. 국민은행이 다음달 23일 옛 국민·주택은행의 전산망을 하나로 통합해 합병은행의 위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인수해 몸집을 키울 채비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들은 국민은행이 전산 통합을 하기 전에도 힘들던 영업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전산 통합이 마무리되면 이를 바탕으로 시장 공략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생각"이라고 이미 밝혔다.

◇내년까지 2~3개 은행 없어질 듯=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국내 금융시장 규모로 볼 때 전국 규모의 은행은 3~5개가 적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라며 은행 합병을 부추기고 있다.

'하나+서울은행' 구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신한금융지주회사다. 지난해부터 한미은행과 합병을 추진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우선 확고한 2위를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므로 합병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신한이 한미은행,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인수한 후 다시 양측이 합병하는 '4자 합병론'도 제기된다. 이렇게 해야 인력·외형 등 모든 면에서 국민은행과 전면전이 가능하다.

신한은행 외에도 ▶하나은행과 합치는 협상이 깨진 제일은행▶서울은행과 합병 기회를 노렸으나 하나은행에 밀린 조흥은행▶3,4위 은행이 몸집을 불리는 바람에 2위 자리마저 위협받는 우리은행 등이 모두 돌파구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옛 국민·주택은행의 합병과 맞먹는 그림도 등장한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우리은행을 하나은행과 합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금융 윤병철 회장 등이 하나은행 출신이라는 점이 자주 거론된다.'하나+서울+우리은행'이 성사된다면 자산 1백50조원 규모로 1백90조원의 국민은행과 승부를 겨룰 만하다.

공적자금을 받은 조흥은행이나 합병 경험이 없는 외환은행도 합병에 적극적이다.

이강원 외환은행장은 "하이닉스 등의 과거 부실을 처리하는 '과거의 전선' 외에 합병을 도모하는 '미래의 전선'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도 추가 합병 가능성=이같은 이른바 '반(反)국민은행 연합'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국민은행도 합병에 실패한 중소형 은행을 이삭줍기하듯 흡수할 가능성이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인적 자원이 우수한 한미은행이나 제일은행이 합병 파트너로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정태 행장은 "낭설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이 자회사로 은행을 보유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김정태 행장의 평소 주장은 전산 통합 이후의 소형 은행 흡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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