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연속극인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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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흔히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굴곡과 반전,모험과 도박,도전과 응전이 공존하는 경기의 특성이 인생을 닮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야구를 진정 인생에 비유할 수 있는 덕목은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매일 일어난다(It happens everyday)."

이 말은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의 스포츠기자 토머스 보스웰이 한 말이다. 보스웰은 '삶은 왜 월드시리즈를 닮았나(How life imitates the World Series)'란 책에서 인생이 야구를 닮은 가장 큰 이유를 '매일 접할 수 있다'는 데서 찾았다(야구가 인생을 닮은 것이 아니고 인생이 야구를, 그것도 월드시리즈를 닮았다는 제목부터가 재미있다).

그는 야구의 경기적 특성인 투수 교체, 대타 기용, 흐름에 따른 변수의 다양함 등이 인생의 여러가지 측면과 유사하지만 그보다는 매일 접하게 되는 야구가 변함없이 하루 24시간을 사는 우리의 일상(日常), 즉 인생과 비슷하다고 본 것 같다.

맞는 얘기다. 야구는 결과의 경기라기보다는 '과정의 경기'다. 또 오늘의 결과가 내일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자연스러운 궁금증을 가져다 주는 '연속극의 경기'다.하루하루 결과에 울고 웃으면서도 내일의 준비와 희망에 가슴을 들뜨게 만드는 그 속에 야구의 진정한 매력이 있다.

한화 이광환 감독은 프로야구의 저변 확대와 흥행을 위해 이른바 '아편론'을 주장한다. "매일 보거나, 듣거나, 아니면 결과라도 확인하지 않고는 몸이 근질거려서 못배기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 '아편론'에는 매일 경기를 치러 인생의 한 부분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장거리 이동과 무더위 속의 더블헤더 등 경기 외적인 힘든 요소들을 이겨나가며 매일을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페넌트레이스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경기력만 겨룰 목적이라면 토너먼트대회로 '××배 프로야구대회'를 치러 가장 강한 팀을 가려내면 그뿐이라는 주장이다.

2002년 프로야구는 어떤가.

월드컵 기간 중 시즌이 중단됐고 혹서기(8월 중)에는 더블헤더를 치르지 않는 규정 탓에 8월 1일부터 18일까지로 예정됐던 64경기 가운데 무려 29경기가 뒤로 미뤄졌다. 집중호우가 계속된 탓도 있지만 더블헤더를 하지 않은 탓도 크다. 그리고 각 팀들이 순위경쟁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뒤로 미룬 경기도 없지 않았다. 10월 초에는 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이래저래 프로야구를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팬들은 페넌트레이스를 일상으로 느끼기 어렵게 됐다.

프로축구가 월드컵 열기를 등에 업고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해서 야구도 어떤 이벤트성 행사(아시안게임의 드림팀 같은)로 그 열기를 부추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아주 일시적일 것이다. '일회성 약물'로 처방하기보다는 근본적인 야구 고유의 매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 야구는 야구다. 그것은 매일 끝나고, 매일 새로 시작해야 한다.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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