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반격 성공한 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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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총보 (1~172)]
黑 . 이세돌 9단 白.구리 7단

승자들의 환한 얼굴과 그들이 토해낸 멋진 말들이 신년을 장식하고 있다. 200여명 프로기사의 세계도 가만히 보면 승자만의 세상이다.

바둑이 예(禮)나 도(道)였던 시절엔 패자에게도 할 말이 있었다. 승패를 떠나 천직으로써 기도(棋道)를 추구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제 바둑이라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패자가 설 땅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패자가 있기에 승자도 있다'는 말은 그냥 넋두리가 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바둑의 수법을 점점 더 신랄하게 변모시키고 있다. 이세돌9단과 구리(古力)7단이 이 판에서 교환한 펀치의 수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 특히 이세돌은 진을 치고 서서히 전투로 돌입하는 종래의 방식을 철저히 거부하고 처음부터 살수를 전개했다.

상변을 넘지 않고 바로 끊어버린 23-25, 그리고 공격 일변도의 29가 그랬다. 첫 판을 이긴 이세돌은 약간의 방심과 자신감, 그리고 즉흥적인 호기심으로 무리하다 싶은 전투를 감행했다. 그중의 백미(?)는 51, 53이었다.

'참고도' 흑1로 두고 백2 때 3으로 귀를 사는 것이 보통의 흐름이었으나 이세돌은 51, 53으로 빵 따내며 귀를 죽이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 기분파적 한 수 때문에 그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이후 이세돌은 온갖 치열한 수법을 총동원해 손실을 만회하고자 애썼으나 구리의 적극적인 선방에 가로막혔다.

확실히 현대바둑은 싸우지 않고서는 이기기 어렵다. 그러나 어디까지 싸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2국까지 승부는 1승1패(172수 끝 백 불계승).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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