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몇 천원이면 해일 이재민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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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기는 스리랑카 동부 바티칼로. 이번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해안지역이다. 세상에 생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리라. 미처 치우지 못한 시신이 해변에 방치돼 있고 그 주위를 굶주린 개들이 어슬렁거린다. 간밤 폭우로 불어난 물 위로 시체가 떠다니고 그 위로는 까마귀 떼가 깍깍거리며 하늘을 뒤덮고 있다.

해안가에 촘촘하던 어부들의 오두막은 흔적도 없고 콘크리트 빌딩은 불도저로 밀어놓은 것처럼 완전히 부서졌다. 물이 덜 빠진 곳에서는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마을사람들은 무너진 집 더미 밑에는 아직 시신들이 많이 있을 거란다. 이곳 사람들은 이 더러운 물을 매일 건너 다녀야 한다. 나 역시 바지를 종아리까지 걷어붙이고 건넜는데 발 밑에 물컹한 게 밟힐 때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번 대참사로 스리랑카에서만 사망 3만여명, 실종 5540여명, 이재민 80만여명이 생겼다. 이들은 현재 전국 799개의 재난민 캠프에 수용돼 있는데, 이 수용소 역시 생지옥이긴 마찬가지다.

불교나 힌두교사원, 교회나 성당 혹은 학교에 마련한 피난민 캠프에 많게는 수천명까지 모여 있다. 눕기는커녕 앉기에도 비좁은 공간에 갓 태어난 아이부터 팔십 노인까지 섞여 지낸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울음소리와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아파서 울고, 어른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통곡한다. 4명의 자녀와 대피하다가 파도에 휩쓸려 바로 눈앞에서 아이들이 모두 떠내려가는 걸 보았다는 아버지. 죽은 아이들 이름을 한명 한명 부르며 오열하다가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이런 집단 수용소의 위생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씻을 물은 물론 식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4000명의 재난민이 있는 사원에 화장실이라곤 단 6개.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 변을 보고, 토하고 쓰레기를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이틀간 폭우가 쏟아져 캠프 전체에 오물이 둥둥 떠다닌다. 이렇게 불결한 집단생활에는 반드시 전염병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보건 관계자들은 설사.피부병.콜레라 등 수인성 전염병은 물론 말라리아.홍역.간염 등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아마추어인 내가 봐도 더운 날씨에, 우기에, 위생시설이 엉망인 이곳에서 수주일 내로 전염병이 창궐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지진 때보다 훨씬 많은 인명 피해가 날 것이라니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 월드비전은 지난 27년간 스리랑카 전역에서 개발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진 피해 상황 파악과 그에 맞춘 긴급구호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전국 26개 주 중 14개 주가 피해지역인데 그중 11개 주에서 350명의 직원과 수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20여만명의 피난민을 돌보고 있는 중이다.

1단계로서 사태 발생 초기 일주일은 구조, 수색 및 시체인양작업을 했고, 재난민촌에 음식과 깨끗한 물, 임시 거처에 필요한 담요, 플라스틱 깔판과 소독약 등 기초의료를 배분했다. 또한 오늘부터 한달간 실시될 2단계에서는 대형 물탱크를 확보해 정수약을 넣은 물을 공급하고 우물 등 마을의 식수원을 확보하며 기초식량배분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전염병 예방을 위한 대규모 방제작업과 이동병원도 운영할 예정이다. 월드비전 한국에서도 이미 2억5000만원을 긴급지원해 식수 및 위생사업을 시작했고 의료단을 급파해 전염병 방지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지금 스리랑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깨끗한 물, 화장실, 간단한 의료품, 임시 피난처다. 그리고 우리들의 관심과 정성이다. 무서운 지진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 그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야 한다. 살려고 애쓰는 이들에게 이웃인 우리가 뭐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여러분의 정성이 고스란히 정수약이 되고 깨끗한 물이 되는 곳, 단돈 몇 천원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곳이 긴급구호 현장이다. 무엇을 더 망설일 것인가!

<스리랑카 바티칼로에서>

한비야 국제NGO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