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쓰러진 古城 되살린 노부부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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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프랑스 중부의 농촌 마을 미뉴레트에 사는 베르나르(73)·리즐로트(65) 케슬러 부부는 여름철에도 바캉스를 떠나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그들이 거주하는 플랑셰트성(城)만큼 운치 있고 안락한 휴양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허리 높이의 철문을 지나 도개교(跳開橋)를 건너면 3㏊에 달하는 숲 속에 사방이 운하로 둘러싸인 그들의 영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플랑셰트 성은 13세기 요새로 지어졌던 것을 16세기에 지방 영주가 별장으로 꾸민 것이다. 세 개의 탑이 있는 본채 외에 비둘기 사육탑과 2개의 별채가 4백평은 족히 넘어보이는 정원을 감싸고 있다.입구 반대편 운하를 건너면 사과와 밤·복숭아·배·버찌 등 유실수들이 빼곡한 농장이 나온다.

케슬러 부부가 30년간 살았던 파리를 떠나 1994년 미뉴레트로 내려왔을 때 플랑셰트 성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버려진 탓에 천장과 계단은 무너지고 벽은 허물어져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는 흉가였다. 케슬러 부부는 당시 환율로 3억원이 채 안돼는 2백만 프랑에 사들였다.

"오죽하면 모두 나무와 땅 값이고 건물 값은 단돈 1프랑이었겠어요. 욕조는 말할 것도 없고 세면대 하나 남은 게 없었죠. 천장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문짝도 없는 방에서 돌조각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매트리스만 깐 채 새우잠을 자야 했습니다."

다음날부터 케슬러 부부의 고독한 고성 복구작업은 시작됐다. 가능하면 부서진 재료들을 그대로 사용해 원형을 살린다는 원칙을 세웠다. 무너진 벽에 돌을 쌓았고 뒤틀린 서까래를 이어 맞췄다. 주변에 널린 잔해들이 어디서 떨어진 것인지를 몰라 전문가를 찾아간 것도 1백차례가 넘는다. 사라져버린 문짝이나 타일·기와 등도 대부분 중고품 시장에서 비슷한 연대에 제작된 것으로 구입해 끼워 넣었다. 처음에는 전문 목수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작업의 90% 이상을 노부부만의 힘으로 해냈다.

"처음 5년 동안 1년에 3백40일을 하루 5시간씩 꼬박 일했죠. 목수나 미장공들의 최저임금인 시간당 1백프랑씩만 따져도 거의 성을 산 값과 맞먹는 액수가 됩니다."

평생 저축한 돈을 털어 성을 구입한 은퇴 부부에게 고성 복원작업은 경제적으로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 프랑스 문화유산 재단이라는 구세주가 나타났다. 96년 설립된 이 재단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아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민간 문화재들을 발굴해 복원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재단. 복원 비용을 직접 지원하기도 하지만 재단의 라벨을 문화재에 부착하는 조건으로 세금 감면을 알선하기도 한다. 또 프랑스 건축가협회의 기술지원도 받을 수 있게 해준다.

"정부를 3년 동안 설득해 얻어낸 결실입니다. 플랑셰트 성처럼 프랑스 전역에 버려져 있는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내 보존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죠." 프레데리크 네로 재단 사무차장의 말이다.

올해로 8년째인 플랑셰트 성의 복원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케슬러 부부의 정성과 그것을 나몰라라 하지 않는 프랑스 정부, 사회단체의 지원에 힘입어 플랑셰트 성은 베르사유 궁전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로 거듭나고 있다.

미뉴레트(프랑스)=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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