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모집 빗나간 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서울의 유명 대입학원인 A학원은 지난달 중순 서울시내 한 유스호스텔에서 '구술면접 캠프'라는 것을 열었다.1학기 수시모집 1차 전형에 합격한 수험생 10여명을 상대로 한 3박4일간의 합숙 프로그램이었다.

학원강사는 물론 서울 주요 대학 교수 세명까지 강사로 참여한 막판 실전강의. 교수들은 수험생들에게 1대 1 면접·논술 지도를 하면서 감점을 줄이기 위한 요령까지 알려준 것으로 밝혀졌다.

"대학 교수들이 직접 강의한다는 점 때문에 1백만원이 넘는 고액에도 불구하고 참가문의가 많았다." 학원장 H씨의 말이다.

그 캠프에 참가했던 수험생들은 대부분 2차 전형에서 최종 합격했다. 그 중에는 강사로 나섰던 교수의 소속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도 있다.

수시모집이 대학입시의 주요 전형방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입시 현장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현직 대학 교수들이 과외교사로 직접 나서는가 하면 고교들이 전문 입시학원에 학생들의 지도를 맡기는 것이다. 물론 고액과외다.

수능시험 성적순이 아닌 특기·적성을 기준으로 신입생을 뽑는다는 전형의 취지가 변질돼 가고 있는 것이다.

◇현직 교수 면접과외 물의=A학원뿐 아니라 서울 강남의 B학원도 H대 법학과 교수가 정기적으로 면접·논술 강의를 하는 등 일부 교수의 입시학원 강의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지역 대학입학관련처장협의회 김승권(고려대 입학관리실장)회장은 "현직 교수가 수험생들에게 면접지도를 하는 것은 도의적인 문제뿐 아니라 문제 유출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대학 교수는 교육공무원법상 영리활동이 일절 금지돼 있다"며 "교수들이 입시학원에서 강의를 못하도록 대학들이 자율적인 규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시수험생 학원 위탁=서울 S여고는 지난달 1학기 수시모집 1차 전형에 통과한 학생들을 아예 입시학원에 위탁해 구술면접 강의를 받게 했다.

수시모집 합격 경쟁을 위해 고교들이 수험생들의 입시지도를 학원에 떠맡기는 일까지 생겨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상대적으로 수시모집 정보가 부족한 지방고교에서 더욱 심각하다.

서울 C학원 관계자는 "일부 지방고는 2차 전형을 일주일쯤 앞두고 수험생들을 상경시켜 학원강의를 받게 한다"고 말했다.

◇"취지 어긋난 과열경쟁 탓"=올 수시모집 정원이 전체 정원의 32%인 12만명(지난해 11만명)으로 늘어나면서 열기는 더욱 달궈지고 있다.

올해부터 수시모집 합격자는 의무적으로 등록하도록 한 조항 때문에 수시모집 거품이 빠진 것도 한 요인이다. 일부 대학이 수시모집 구술면접 전형에서 고교 수준을 넘는 어려운 문제를 출제, 수시모집의 사교육 의존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교조 이경희 대변인은 "수시모집은 전형방법의 다양화를 위해 도입된 것인데 일선 고교의 실적 경쟁,일부 대학의 우수학생 선점 욕심 때문에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현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