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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출신 암호병을 사수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신작 '윈드토커'는 올해 쏟아졌던 할리우드 전쟁영화와 그다지 변별성이 없는 작품이다. 예컨대 소말리아 사태를 다룬 '블랙 호크 다운'이나 태평양 전쟁을 그린 '위 워 솔저스'를 보았다면 '윈드토커'의 매력은 반감될 수 있다. 피가 튀고 살점이 찢겨나가는 참혹한 전장을 극사실적으로 담아낸 카메라 워킹이 크게 다르지 않고, 전쟁의 비인간성을 병사애·가족애 등 보편적 가치로 에둘러 비판한 주제 의식도 엇비슷하다.

결론적으로 '윈드토커'는 전쟁영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 소위 홍콩 누아르 영화의 비장미와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기술을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페이스 오프'의 우위썬을 기대했다간 실망이 클 수 있다. '영웅본색''첩혈쌍웅'의 우위썬 대신 할리우드의 주류 감독으로 자리를 굳힌 우위썬이 도드라져 있기 때문이다.

윈드토커란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나바호 인디언 출신의 암호병을 가리킨다. 코드토커로도 불린다. 미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바호족의 복잡한 언어체계를 암호로 활용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영화에선 이들 윈드토커를 사수하라는 특급 명령을 받은 미군 중사 조 앤더슨(니컬러스 케이지)과 국가를 위해 자원 입대한 암호병 벤 야흐지(애덤 비치)의 갈등과 우정이 펼쳐진다.

암호병이 적에게 포로로 잡힐 위험에 처하면 그를 사살해야 한다는 임무를 띤 조. 그가 처음엔 벤을 무시했으나 점차 인간적으로 동화돼가는 과정이 작품의 중심축이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로 수렴되는 모습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 자기가 지휘했던 부대원이 일본군에게 몰살당했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와, 자연과 합일돼 살아가는 인디언의 전통을 간직한 벤의 대치와 화해가 우격다짐식으로 느껴진다. 총성이 울려대는 전장의 요란함과 일몰이 장관인 인디언 마을의 정적을 대비시킨 화면 구성도 창의적이지 못하다. 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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