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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코스프레' 축제 : 나도 만화 속 주인공 돼볼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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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은 주말이면 '만화속 세상'으로 변신한다. '비천무'의 여주인공 '설리'나 달의 요정 '세일러문',최근 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모험'의 얼굴 없는 요괴가 등장한다. 언젠가 한번 본 듯한 만화속 주인공들이 지하철역에서부터 전시장까지 떼지어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외국도시의 가장행렬 같다.

웅성거리며 쳐다보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않고 지나가는 이들은 모두 '코스프레 만화축제'에 가는 길이다.

'옷을 가지고 논다'는 뜻의 '코스튬 플레이'의 일본식 약어(語)인 코스프레를 즐기는 매니어들은 한달에 두어번 이곳에서 모임을 갖는다. 1989년 20여개의 만화 동호회로 시작해 현재는 전국에서 5백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이나 게임 캐릭터, 창작 의상까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튀는' 옷으로 분장하면 누구나 받아준다. 그래서인지 무더운 날씨에도 손에 스타킹을 끼고 온몸을 천으로 감고 나타나는 '요괴'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여전사를 흉내내 과감한 노출도 마다않는 화끈한 스타일도 있다.

중국 전통복장의 이경희(20·여·대학생)씨는 "코스프레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고교 축제 때 처음 코스프레를 접한 씨는 "본디 매사에 소극적이었지만 이 행사에 참여하고부터 사진촬영에 응할 만큼 대담해졌다"고 말했다.

의상 선택에서 행동·언어까지 모든 것이 자유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룰이 있다. 촬영시 모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몰래 찍는 것은 안된다. 진짜 칼이나 쇠사슬 등 위험한 소품도 사용 금지다. 대부분 자신의 옷을 스스로 만들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구입하기도 한다. 보통 한벌에 7만~8만원이며 큰 천사날개 같은 것은 10만원에 거래된다.

'다코동'이란 동호회 회원인 오동휘(17·단국공고1년)군은 "코스프레를 모르는 사람들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면박을 주기도 하지만 한번 빠져든 사람은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며 "초등학생부터 40대 아저씨까지 함께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준비한 것을 다른 사람이 보고 즐거워하는 데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카'회장 유재황(29·만화가)씨는 "수동적으로 만화를 보기만 했던 과거 세대와 달리 이들은 직접 주인공이 돼 만화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세대"라고 말했다.

만화축제가 열리는 날마다 행사장을 찾는 사람들은 4만여명. 직접 의상을 입고 참여하는 사람들 외에 아마추어 사진작가나 아이와 함께 온 부모들,외국인 관광객도 많다. 여의도가 만화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는 서울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미국인 케네스(21·관광객)는 "미국에도 스타워즈 주인공이나 뱀파이어 복장을 하는 코스튬 플레이가 있지만 한국이 훨씬 더 다양하고 창의적"이라고 놀라워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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