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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연작『J이야기』 펴낸 소설가신경숙]"평론가들 신경쓰다보면 작품 못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신경숙(39)의 착한 여자 '제이'. 그가 새로 펴낸 '초미니 단편 연작 소설' 『J이야기』의 주인공 J는 바로 착한 여자다. 이선희의 노랫말 "제이~, 스치는 바람에 제이~, 그대 모습 그리워~♩♪♬"처럼 다소 감상적인 여자이기도 하다.

시골의 어느 소읍에서 태어난 J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출판사에 다니다 8년 여의 연애 끝에 결혼해 네살 난 딸을 둔 평범한 주부다. 소설은 J가 자라며 보고 듣고 겪고 느낀 이야기 44편으로 구성돼 있다. 각 편이 하나의 콩트다. 그건 이 책의 탄생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이 소설은 신씨가 1985년 등단한 후 93년 『풍금이 있던 자리』로 명성을 얻을 때까지 화장품 회사의 홍보지 같은 각종 사외보 등에 기고했던 콩트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것을 이번에 대폭 수정하고 하나의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 책을 낸 것이다. 당시 그 글을 쓰고 받은 원고료로 작가는 일용할 양식을 얻었다.

"당시 문예지 원고료가 원고지 한 장 당 2천원쯤이었을 거예요. 단편 소설 한 편 쓰고 나면 20만원을 받았는데요, 콩트 한 편에 7만원을 줬으니…."

그러나 웬걸, 배고프고 힘든 시절의 원형이 담겨있을 것 같은 이번 소설은 한없이 우울하고 슬픈 그녀의 대표작들과는 달리 다소 유쾌하다. 마치 복고풍의 순정만화같다고 할까. 존재의 근원을 찾기 위해 작심하고 쓴 게 아니라 작가도 자신의 추억을 즐긴 듯한 소품(小品)이다.

다음과 같은 부분은 신경숙식 유머이자 순정이다. 연애가 잘 안 돼 상심한 J. 방 한 쪽에 있던 전화번호부를 뒤적인다. 홧김에 무심코 '김방구'란 이름을 찾았는데, 있다. 전화를 건다. "거기 김방구씨 댁이죠?" "그런데요." "김방구씨 바꿔주세요." "전데요." "………." "말씀 하시라니까요." "……." "여보세요?" "……뽕!"

마지막이 원래는 "미안합니다"였다고 하니, 작가가 이 원고를 고치며 기차가 일곱시에 떠나기 전 풍금이 있던 외딴 방을 떠올리고 웃었을 모습이 그려진다. 스스로는 "이삿짐을 싸다가 사진첩을 펼쳐놓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신씨는 등단 20년이 돼간다. 그 사이 90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됐다. 마침 그에 대한 평가가 과장됐다는 비평가들의 책(『주례사 비평을 넘어서』)이 같은 시기에 출간됐으니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얘기에 별로 관심없어요. 평론가들의 말 하나 하나에 신경쓰다 보면 어떻게 작품을 쓰겠어요. 평론가는 그들 하는 일이 있는 거니까."

이 말 뒤로는 즉답을 피하고 우회적으로 답했다. "한국사람이 한국 작가를 너무 낮춰보는 경향이 있어요. 얼마 전 유미리씨와 대담하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일본 소설은 우리나라에 다 소개가 되는데 한국 소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냥 하면 완전히 작가와 독자의 대화죠. 그래서 내 작품 몇 편이라도 보내 읽은 뒤 하자고 했죠. 마침 읽고 왔더군요. 그제야 말 그대로의 '대담'이 되는 것 같았어요. 이런 경우가 참 많았어요."

『J이야기』를 쓰며 여러번 웃었다는 신씨는 요즘 집필 중인 새 장편소설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산책할 때나, 화장실에 있을 때나 항상 그 소설 생각에 "안 쓰고 있을 때가 정말 더 쓰고 있을 때"라고 한다. 이제 신씨가 어떤 작품을 대답으로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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