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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강우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사실 지난 몇 년간 휴가다운 휴가를 한번도 가지 못했다. 1997년 늦은 나이에 결혼식을 올렸을 때조차도 일 때문에 신혼여행을 1박2일로 접고 돌아와야 했을 정도로 바빴다. 남들은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8월에도 나는 일만 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9월 개강하는 강우석 영화아카데미에 들어올 학생들을 뽑아야 한다. 응모자들이 제출한 시나리오와 필름이 각각 1백여편에 이른다. 눈이 아플 정도로 응모작들을 보고 나면 하루가 저물고 저녁에는 술자리가 많다.

이러니 휴가 계획이라고는 끼어들 틈이 없다. 고의로 '워커홀릭'이 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아내를 볼 낯이 없다. 올초 나는 아내에게 결혼한 지 5년째가 되는 올해만은 단 며칠만이라도 여름 휴가를 즐겨보자고 다짐을 되풀이했었는데, 결국 또다시 공약(空約)을 되풀이한 셈이 된 것이다.

그래서 '좋은 남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쁜 남편'이 되지는 않기 위해 이번 주에 '중대 결심'을 했다. 아내 혼자 휴가를 갈 수 있도록 세 아이를 떠맡기로 한 것이다. 네살·세살짜리 사내애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겨우 한살배기인 딸은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줘야 할 판국이다. 미술 전공을 한 아내는 나와 아이들을 과감히(!)버려두고 뉴욕에서 열리는 미술 행사들을 순회하겠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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