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거장 화랑가 달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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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대중에게 친숙한 글자나 이미지로 매무새 야무진 야외조각을 세운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사랑)"(上)와 짧고 비판적인 경구나 격언을 소재 삼아 언어를 통한 메시지의 전달을 꾀하는 홀처의 "제43대 미국 대통령에게".

작품 값이 비싸고 유명하고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서구 현대 작가 3명이 한국의 겨울 화랑가를 휘어잡았다. 수 백만 달러에 이르는 그림값으로 경제지에 오르내리는 독일 작가 시그마 폴케(64),'LOVE(사랑)'라는 글자 하나로 미국 팝 아트의 얼굴이 된 로버트 인디애나(77), 전기 모니터 옥외 광고판의 원조 격인 미국 여성 작가 제니 홀처(55)가 그들이다. 미술시장은 긴 불황이라는데 외국 인기작가의 국내전은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술관을 포함해 '살 사람은 산다'는 화랑의 고객 확신이 지난해에 이어 새해에도 해외 거물을 불러들이고 있다.

'시그마 폴케'전(3월 31일까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그림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로 흥미롭다. 독일 경제지 '카피탈'이 2003년 1위, 2004년 2위로 그림값을 매긴 시그마 폴케의 대작 '서부에서 가장 빠른 총'등 2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영국과 독일 현대 미술 수집에 재력과 솜씨를 보이고 있는 김창일 아라리오 대표를 위해 폴케가 직접 골라줬다는 작품이다. 정통 캔버스와 물감 대신 질산은.레진 등 여러가지 화공학 재료를 뒤섞어 현대미술의 다양한 사조를 비벼넣은 '이 발명은 인류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식량배급표' 등이 나왔다. 041-551-5100.

'로버트 인디애나'전(16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는 현대 명작의 실상을 피부로 체험할 수 있다. 영어 알파벳과 숫자 등을 반질반질하고 매끄러운 빨강과 파랑의 원색 조각으로 만든 인디애나의 작품은 '최초'라는 창작의 독창성과 깔끔한 마무리를 빼면 좀 싱겁다고 느낄 수 있을만큼 반복이 건조하다. 02-734-6111.

'제니 홀처'전(23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 갤러리)은 언어가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로 감상에 몰입하기가 꽤 힘든 경우다. 홀처는 대형 옥외 간판이나 포스터에서 출발해 전기 작동식 옥외 광고판에 '돈이 안목을 낳는다''이기심은 행동의 가장 근본적인 동기다'등의 사회비판적인 문구나 발언을 적어넣은 것으로 이름났다. 하지만 한국 관람객 대부분은 꽤 멋있게 번쩍이는 발광체라는 인상 외에 영어 문장이 빠르게 지나가는 그의 작품을 제대로 즐기기가 무리인 듯하다. 02-735-8449.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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