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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9) ‘중국에 호구잡힌 한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러분, 혹시 '호구잡혔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제가 어릴 적 시골(충북 청원)에서 흔히 썼던 말입니다. 사전에는 없으니 사투리겠지요. '남에게 약점 잡혀 질질 끌려다니는 것', 그 게 바로 호구잡힌 겁니다. 팽팽하게 맞서던 두 사람이 결국 한 판 싸움을 벌입니다. 그 중 이긴 사람은 기세가 등등하고, 진 사람은 꼬리를 내리게 되지요. 진 사람이 바로 호구 잡힌 겁니다. 승자의 눈치를 봐야하고, 비실비실 피해다녀야 합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이후 중국과 한국의 역학관계를 보면서 '호구잡혔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북한을 싸고도는 중국의 반발에 막혀 안보리는 어정쩡한 성명을 내야 했고, 중국은 이제 한미 연합훈련도 하지 마라고 위협합니다. 중국 언론은 '한국이 경제는 중국에, 군사력은 미국에 의존하는 전략분열증을 보이고 있다'며 분명한 노선을 선택하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합니다. 중국을 무시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심지어 미국도 그들의 눈치를 봅니다. 참으로 역같은 상황입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중국과 수교한 게 1992년입니다. 수교 초기 우리는 '역사 이래 처음으로 우리가 중국을 앞서는 관계'를 만끽했습니다. 기업인들은 중국에 가 돈자랑을 했고, 누구누구 만나고 싶다면 모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한반도 정세를 우리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지요(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역전된 상징적인 사건이 이었습니다. 중국에 호구 잡힌 것이지요. 그 '호구'의 기억을 더음어 봅니다.

제가 베이징특파원 생활을 하던 2000년 5월 말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중국 산 마늘에 대해 최고 315%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을 발동될 것 같으니 중국의 대응을 주시하라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마늘파동'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6월 1일 세이프가드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중국 농산물 가격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315%관세를 물고는 한국시장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중국 산 마늘의 수입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린 것이지요. 당연히 중국이 반발했습니다. 꼭 일 주일 후 중국이 대응조치를 발표합니다. '한국산 폴리에틸렌과 핸드폰 수입을 금지한다'는 것이었지요.

'홧~?'.

한국은 '아뜨거!'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 들여오는 마늘 다 합쳐봐야 1천만 달러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막아버린 시장 규모는 5억 달러를 넘는 규모였지요. 게다가 중국 핸드폰 시장은 'CDMA강국'이라는 한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분야였습니다. 업계에서 난리가 났지요. 언론에서도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다며 정부를 질타했습니다.

정부가 다급해졌습니다. 부랴부랴 중국에 협상을 제안했지요. 6월29일 베이징에서 협상이 시작됩니다. 중국은 급할 게 없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와서 따져보자'는 식이었지요. 한국 협상 대표단만 본국에서 훈령을 받아가며 애가 탈 뿐이었어요. 국내에서는 '산업 피해가 늘어가고 있다'며 조속한 타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중국 대표들은 그 분위기를 즐기는 듯 했습니다. 그들은 오늘 합의 해 놓고는 다음 날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호구잡힌 겁니다. 취재하는 내 스스로가 챙피할 정도로 농락당하고 있었습니다.

7월15일 협상이 끝났습니다. 3만2000t을 50%이하의 저율 관세로 수입해주기로 했지요. 당시 수출입 상황으로 볼 때 중국 수출물량을 소화하고 남을 물량입니다. 핸드폰과 폴리에틸렌에 대한 중국의 수입금지 역시 풀렸지요. 40여일 만에 마늘 세이프가드는 없던 일이 됐던 겁니다. 온 나라를 확 뒤집어 놓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듬해 4월 중국이 한국 외교부에 공식 문서를 한 건 보냅니다. '약속한 마늘을 사가라'는 것이었지요.

'왠 마늘?'
'작년에 너희들이 사가기로 했던 3만2000t에서 덜 수입한 부분 1만t'

협상문이 문제였습니다. 중국은 '협정문에 명시된 물량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밀어붙였습니다. 한국 측은 '정부가 수입해주기로 한 물량(1만t)은 모두 수입해 줬으니, 나머지는 민간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민간이 가격을 이유로 수입하지 않는 것을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는 식이었지요. 제2차 마늘파동이 일어난 겁니다.

협상문문을 놓고 서로 이견이 있다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영어 협정서를 보면 됩니다. 당연히 언론에서 '영어 협정문을 보여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외교부 답이 걸작입니다. '그냥 중국어와 한국어로만 작성했다'.

여론이 들끓습니다.

'세상에 외교협상을 하면서 영문 협정서를 안만들어? 너희들 외교관 맞아?'

결국 한국은 1만t을 다시 사줘야 했습니다. 한번 호구가 잡히면 헤어나기 어려운 겁니다. 2차 마늘파동 역시 한국의 완패였지요.

그게 끝이냐구요?

아닙니다. 다시 이듬해 6월 중국 산 마늘이 다시 언론에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이면합의가 문제였습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옷을 벗어야 하는 대형 사건이었지요.

다음 얘기는 목요일 콘서트에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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