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미쓰비시 보상보다 사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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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덕(오른쪽) 할머니와 이금주 회장이 미쓰비시중공업의 협상 제의 소식에 기뻐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협상을 하자고 알려왔습니다. 한마음으로 뭉쳐서 도와준 광주시민과 많은 일본인의 힘이 컸습니다.”

일제 말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다가 임금 한 푼 못 받아 자신이 일한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던 양금덕(82) 할머니가 18일 광주광역시 진월동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사무실을 찾았다. 소송을 도와준 이금주(91·여) 유족회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양 할머니는 1944년 5월 나주 대정국민학교에 다닐 때 “일본에 가면 공부도 하고 돈도 벌게 해주겠다”는 일본인 교장의 말만 믿고 일본 나고야로 갔다. 그때 함께 간 전남·충남지역 13∼16세 소녀 300여 명은 나고야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작사에서 매일 10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태평양전쟁이 끝나자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99년부터 양 할머니 등 8명은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번번히 소송을 기각했다.

2009년 9월엔 일본 후생노동성 사회보험청이 이들의 후생연금 가입 사실을 확인하고, 3개월 뒤 연금 탈퇴 수당으로 총 99엔(약 1367원)을 지급하기로 해 한국인의 분노를 샀다.

10년 넘게 힘겨운 투쟁을 해 온 양 할머니는 “보상을 위한 협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죄”라고 강조했다.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에서 1인 시위에 참여하는 등 근로정신대 소송에 힘을 보탰던 이 회장은 “그동안 겪은 아픔과 설움을 조금 위로 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광주=유지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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