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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멸종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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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질학과 고(古) 기후학이 발달하면서 수십억년의 지구 역사를 바꿔 놓은 격변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폼페이시를 묻어버린 베수비어스 화산의 폭발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사건들이다.

공룡의 멸종에 대해서는 화산 폭발설과 운석 충돌설이 팽팽히 대립했으나 최근에는 고 기후 변화와 공룡 알껍질 화석 연구 등을 토대로 새로 등장한 '융합설'이 힘을 얻고 있다. 2백50만년 전에는 남극 서부의 얼음이 완전히 녹았고, 1만년쯤 전에는 동해 바다의 소금기가 갑자기 묽어졌다는 기상 이변의 흔적도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같은 격변의 반대 증거도 일부 나오고 있고, 이변의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점도 있어 학계에 논란이 많다.

◇공룡의 최후=화산 활동 때문에 지구 내부의 유독 물질이 대량으로 뿜어져 나온 증거가 나오면서 공룡의 멸종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융합설'이 최근 대두됐다. 요컨대 1백만년에 걸친 격렬한 화산 활동으로 공룡이 서서히 사라져 갈 때 거대한 운석이 결정타를 날려 멸종됐다는 것이다.

6천6백만년 전 지각 변동이 심해지며 화산이 엄청난 용암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지질조사에 따르면 인도 북쪽에서는 공룡이 멸망한 약 6천5백만년 전까지 1백만년 동안 용암이 뿜어 나와 2천4백m 두께로 덮이며 지금의 데칸 고원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며 공중에 뜬 화산재가 햇빛을 가려 점점 추워졌다. 해양학자들은 '유공충'이라는 화석을 분석한 결과 당시 바닷물의 평균 온도가 5도쯤 낮아졌음을 알아냈다. 이는 대기온도가 10도 정도 떨어졌음을 나타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산에서 '셀레늄'이란 독성 원소도 뿜어 나왔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융남 박사는 "화석을 보면 셀레늄 때문에 공룡 알껍질이 얇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알이 쉽게 깨져 공룡의 수가 1백만년 동안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멕시코 유카탄 반도 앞바다에 지름 10㎞짜리 운석이 떨어졌다. 박살난 운석 가루와 흙먼지가 솟아 올라 하늘을 덮은 뒤 서서히 떨어졌다.

이런 증거는 'KT-경계'라 불리는 지층에서 발견된다. 6천5백만년 전 만들어진 두께 5㎝ 가량의 지층으로, 운석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리듐 함량이 여느 지층의 30배나 된다. 운석 가루가 하늘로 솟아 바람을 타고 퍼졌다가 떨어져 쌓인 흔적이다.

KT-경계는 유카탄 반도 부근은 물론 이탈리아·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발견됐다. 당시 지구 전체가 운석 먼지로 덮였다는 얘기다. 이처럼 먼지가 햇빛을 가린 암흑 시대가 계속되는 동안 지구의 기온은 영하 60~80도까지 내려갔고, 결국 공룡 등 수많은 생물이 멸망했다고 융합설은 설명한다.그러나 당시 온도변화를 알려줄 화석이 남아 있지 않아 정말 이렇게 추워졌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때 몸집이 작은 포유류는 동굴이나 땅 속에서 추위를 피해 살아 남은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당시 포유류는 지금보다 훨씬 작아 땅속 생물을 먹으면서 연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악어 등이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서는 과학자들도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동해의 수수께끼=지구가 따뜻해지면 극지의 얼음이 녹아 바닷물이 싱거워지고, 반대로 추워지면 염분 농도가 높아지는 게 보통이다. 1만1천~1만년 전에 약한 빙하기가 왔을 때에도 전세계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어느 정도 올라갔다.

그러나 이 시기 동해는 정반대로 묽어졌다. 우리나라의 기상연구소는 올초 동해 바닥의 퇴적물을 정밀 조사해 당시의 염분 농도가 평상시보다 15% 정도 낮아졌음을 알아냈다. 지질자원연구원 전희영 박사는 "4억4천만년 전 염분 농도가 30% 떨어진 때문에 전체 바다 생물의 65%가 절멸했다"며 "15%도 어마어마한 변화"라고 말했다.

바다가 싱거워졌다는 것은 엄청난 민물이 흘러들어갔다는 뜻. 때문에 당시 수백년 동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비가 내렸다는 학설도 있다. 그러나 부산대 김부근(지구환경시스템학부) 교수는 "해수면이 낮아 얕은 바다의 바닥이 드러나는 바람에 동해가 태평양과 나뉘어져 싱거워졌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동해는 대한 해협의 좁은 통로로만 큰 바다와 연결돼 있었는데, 이곳을 통해 바닷물보다 중국 황하의 강물이 많이 흘러들어 동해 바닷물이 묽어졌다는 설명이다.

◇남극 논란=1990년대 들어 남극 서부에서 약 2백50만년 전에 살았던 아열대성 미생물의 화석이 잇따라 발견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상연구소 신임철 박사가 99년 남극에서 아열대성 미생물 화석을 찾았으며, 현재 연대를 확인중이다.

이런 생명체가 살았다면 2백50만년 전 남극의 얼음은 모두 녹았고, 이에 따라 해수면이 올라갔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해안 지층에 남은 밀물과 썰물의 자국 등으로 미뤄볼 때 이때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7.5m 정도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약 1천2백만년 전 남극에 얼음 대륙이 생긴 뒤로는 얼음을 녹일만큼 온도가 올라갔다는 징후가 어디서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과학자는 남극 서부의 얼음 밑에 화산이 있으며, 때때로 화산 활동이 활발해지면 그 열로 얼음이 녹았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화산이 없는 동부에는 얼음이 녹은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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