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밖은 찜통, 실내는 ‘국왕 온도 18도’40만 주민에 차 40만대…10대 가진 집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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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지도자가 좋아하는 실내 온도를 지킨다? 푹푹 찌는 날씨의 브루나이 왕국이 실내 온도를 섭씨18도로 지키는 이유다. 제법 풍부한 석유로 냉방 비용을 댄다. 브루나이 탐방기를 중앙SUNDAY가 전한다.

한국에서 인기 만점인 양념 치킨을 브루나이로 가져가면 어떨까. 고개를 돌릴 가능성이 거의 100%다. 닭이 문제가 아니다. 도살 방식 때문이다. 이 나라에선 샤리아(이슬람법)에 따라 도살하지 않은 짐승은 못 먹는다. 한국 닭은 샤리아식으로 죽지 않는다. 브루나이는 바로 이 ‘샤리아 스탠더드’, 즉 ‘할랄 브랜드’를 국제화하는 데 앞장선다. 할랄은 ‘이슬람 계율에 따른다’는 의미다. 할랄이 글로벌 기준이 되면 한국 식품과 가공품의 이슬람권 수출은 막힐 수 있다. 아세안과 한국 외교부의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으로 6월 30일~7월 3일 방문한 브루나이를 소개한다.


▲브루나이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에 있는 이슬람 사원. 이 나라는 907년 이슬람을 받아들여 1000년 넘은 원조 이슬람 국가를 자처한다. 반다르세리베가완=안성규 기자

몸이 으스스 떨린다. 브루나이의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의 센트레포인트 호텔. 밖은 30도를 웃도는데 방엔 추워서 있지 못하겠다. 담요를 뒤집어 쓴다. 이 호텔만이 아니다. 호텔 밖 커피숍, 기자단이 탄 버스, 음식점 다 마찬가지다. 적도 바로 위 북위 4도에 있는 열대 국가가 아니다. 이슬람 절대왕정 체제인 이 나라의 하사날 볼키아 국왕이 좋아하는 18도에 실내 기온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34도 찜통 거리에서 실내로 들어가면 16도가 뚝 떨어진다. 한국에서 이랬다간 에너지 낭비로 고발당하겠지만 이 나라는 아니다. 40만 주민 중 자국민 26만을 기준으로 2008년 석유·가스 수출로 벌어들인 수입이 1인당 4만 달러쯤 된다. 실제 1인당 GDP는 3만6000달러. 이 통계 속엔 문제가 숨어 있다. 왕과 95개 귀족 같은 상위 몇 %가 독식하고, 상당수 주민 소득은 연 3000달러 선이다. 인구 10% 선이 ‘열악한 환경에 빈곤층이 수두룩한’ 수상 가옥에 산다. 그러나 어쨌든 즉위 42년째인 29대 볼키아 국왕의 정책에 따라 국민은 긴소매 옷을 입어가며 에어컨을 펑펑 틀고 ‘국왕의 온도’ 속에 산다. 석유로 돈을 벌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이후 풍속도란다.

오일 머니가 펑펑 들어오지만 최장수 이슬람 절대 왕정이고 인구 66%가 이슬람이어서 유흥 문화가 약한 탓인지 특이한 소비 행태가 생겨났다. ‘차 중독’ 현상이다. 나라 전체의 보유 차량은 40만 대라는데 가구당 평균 보유 대수는 5대라고 한다. 임시 거주자를 제외한 26만 주민이 다 그렇다는 게 아니다. 상위층 평균으로 추정되는 수치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현지인들은 “국왕의 차가 5000대쯤”이라 한다. 95개 귀족 가문도 꽤 될 것이다. 그러나 수상 가옥 주민에겐 차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10대 이상 보유’ 가구도 아주 많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취업자의 57%가 공무원이고 제조업 하나 없이 석유만 퍼올리는 이 나라 거리엔 외제차만 굴러다닌다.

수상 가옥 박물관을 안내했던 20대 여성은 “집에 차가 7대”라고 했다. 아버지는 중간직 공무원, 어머니도 비슷하다. 그는 “정비소가 적으니 차가 여러 대 있어야 대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응시한 짬을 내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하는 피가(19·여)의 집엔 벤츠 두 대, 일제차 두 대. 쌍용차 한 대 모두 다섯 대다. 부모는 공무원. 파라는 “운전할 사람은 셋뿐”이라고 했다.

소득만으로 보면 부르나이는 아시아 최고다. 인구도 적은 경기도 반만 한 나라가 ‘석유·가스 밭 위에 앉아 있다’고 한다. 일산(日産) 17만 배럴의 석유는 한국·일본·호주로, 가스는 90% 일본, 10%는 한국으로 수출된다. 개인 소득세도 없다. 나라의 58%는 아직도 원시림. 남중국해로 향한 해변의 맹그로브(홍수림) 숲과 지류 일부는 관광 코스로 개발돼 있다. 수량 풍부한 계곡을 ‘롱(long)-보트’를 타고 오르내리고 카누도 타며 래프팅도 한다.

이렇게 넉넉한데도 도약을 꿈꾼다. 경제개발청(BDBE)의 레라 슈아일리 공보관은 “정유공장 중심의 산업 단지, 푸라우 무아라 베사르 섬의 대단위 종합 물류 항구 건설을 계획한다”고 했다. 항구 건설 총투자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1단계 정비사업에만 13억 달러다. 이런 자국 내 투자보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할랄 브랜드’라 부르는 ‘글로벌 이슬람 스탠더드’ 사업이다.

7월 1일 산업자원부를 찾았다. 하자 노르마 국장이 설명한 할랄 프로젝트는 ‘샤리야 방식으로 만들거나 서비스해야 이슬람권 수출 도장을 찍어 준다’는 야심 프로젝트다. 미 식품의약국(FDA) 인가를 받을 의무는 없지만 있으면 수출에 유리하고 아니면 힘든 현실을 원용한 것이다. 노르마 국장은 ‘브루나이 다루살람 스탠더드’라는 설명서를 보여줬다. 그중 ‘할랄 푸드’의 13~15페이지엔 닭·소·양 도살법이 있다. 칼로 목의 경동맥을 정확히 갈라야 된다. 아니면 브루나이 상륙을 못하고, 십중팔구 ‘반(反)이슬람 식품’이 돼서 아랍권 진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생선은 상관없다.

이슬람 교도가 많은 나라, 혹은 이런 나라로 수출하려는 국가들은 심각하다. 영국엔 이미 가금류를 기계 도살하느냐 손으로 하느냐 논란이 있었다. 말레이시아에는 기계 도살이 거의 금지됐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 불교 국가인 태국도 신경 쓴다. 인도네시아·싱가포르도 그렇다. 캐나다·뉴질랜드·몽골은 재빨리 할랄식으로 각각 소와 양을 키우고 도살해 수출한다. 유럽의 이슬람국가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도 관심을 보인다. 영국의 켄터키치킨(KFC)과 프랑스의 퀵(Quick·햄버거 체인)도 매장 일부를 할랄식으로 운영했다.

말레이시아가 1996년 ‘할랄 허브’를 주창하며 시작된 할랄은 2006년 브루나이가 끼어들면서 커져 2010년에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포럼이 개최될 만큼 성장했다. 브루나이는 ‘우리는 확실한 이슬람국’이라며 승부수를 던진다. 서기 907년 이슬람이 들어와 이슬람이 생활에 가득 찬 원조 이슬람국이란 것이다. 브루나이의 모든 공식 자리는 축복 기도로 시작한다. 항공기도 이슬람 축복 절차 뒤 이륙한다.

무서운 것은 할랄 브랜드가 식품을 넘어 화장품·의약품도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개·돼지 문제가 있다. 이슬람권에서 개·돼지는 불결의 상징. 손도 대면 안 된다. 돼지 피부에서 추출해 여성 피부를 촉촉하게 해주는 콜라겐이 서방에선 인기겠지만 이슬람권에선 죄악이다. 개를 키우거나 만진 사람이 음식을 만들거나 화장품·의약품 제조 과정에 끼어들다간 시비가 걸릴 수 있다. 할랄 방식의 레스토랑·숙박 사업도 거론된다. 소위 서방 방식과는 다른 조건이 할랄 브랜드의 핵심 컨셉트다. 그래서 할랄은 전 세계 인구 25%인 이슬람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노르마 국장은 “지금 시장은 5000억 달러 규모지만 조만간 1조 달러가 될 것”이라며 “캐나다와 일본 회사가 이미 할랄 의약품 분야에 진출했다. 한국은 화장품 쪽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노르마 국장은 ‘프라운 크래커’라는 봉지를 들어 보였다. 우리로 치면 새우깡.

-한국 새우깡이 들어오면 어떤가.
“튀김용 기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야자유를 써도 문제인가.
“샤리아 기준에 맞는지 검사해야 한다”

-그건 이슬람식 음식 패권주의 아닌가.
“할랄은 선택이지 강제가 아니다.”

‘할랄 스탠더드’에 맞지 않으면 세계 인구의 25% 즉 24억 명은 포기해야 할 판이다. 에어컨 때문에 이미 추웠지만 오싹한 느낌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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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르세리베가완(브루나이)=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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