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영수증 잘못 버리면 낭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회사원 梁모씨는 최근 신용카드 청구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지도 않은 1천2백만원어치의 물품 대금을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청구했기 때문이다. 회사 동료 몇명도 같은 일을 당했다고 한다.

梁씨 등이 자체 조사를 벌여 찾아낸 범인은 바로 최근에 직장을 그만둔 A씨. A씨는 동료들이 평소 휴지통에 무심코 버리는 카드 매출전표를 모아뒀다가 여기에 있는 카드번호·유효기간을 이용해 물건을 사들인 것이다.

최근 신용카드 매출전표를 이용한 범죄가 성행해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범인들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카드번호와 유효기간만 알면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서울경찰청이 지난 24일 적발한 카드사범 네명 역시 별 생각없이 버려지는 신용카드 매출전표를 이용했다. 과학고 출신의 명문대 중퇴생 두명이 포함된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대전 유성과 서울 신촌 일대의 유흥가를 돌아다니며 휴지통에 버려진 카드전표 3백50장을 모았다.

이들은 경매 사이트에 들어가 2백50만원 상당의 노트북을 2백만원에 판다면서 구매 희망자를 끌어들여 돈을 받아냈다. 이후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카드번호를 넣고 노트북을 구매 희망자의 주소로 배달시키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들은 또 도박 사이트에서 카드번호를 넣고 칩을 다량 구입한 뒤,이를 제3자에게 현금을 받고 파는 수법 등을 썼다. 이런 식으로 이들이 취한 부당이득은 모두 1억3천만원에 달했다.

소비자보호원은 "최근 카드 매출전표 사기로 보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지난해에 전체 10여건에 불과하던 관련 민원이 올 들어 벌써 30여건이나 접수됐다"고 밝혔다.

고객 카드를 아예 복제하는 이른바 '스키밍' 수법까지 등장했다. 한달 전 서울 중부경찰서가 검거한 주유원 6명의 경우 주유소에서 고객들이 카드로 결제할 때 '스키머'라는 기구를 이용해 신용정보를 빼낸 다음 똑같은 카드를 복제해 마구 썼다.

선진국에서도 지능적인 신용카드 범죄 수법이 유행하고 있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해킹을 통해 은밀히 파악된 신용카드 번호들이 암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며, 이에 따른 피해액이 전세계적으로 연간 10억달러에 달한다고 전했다.

◇원인·대책=인터넷 쇼핑몰들은 매출 확대를 위해 당연히 해야할 본인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있다. 일부 대형업체를 제외한 상당수의 인터넷 쇼핑몰은 비밀번호·주민등록번호 등의 입력을 생략하고 있다. 급성장 중인 케이블TV의 홈쇼핑 채널들도 이런 절차를 생략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사고 발생시 가맹점이 전액을 보상하도록 한다는 '미서명 수기 특약'을 가맹점(쇼핑몰 등)과 맺고 있기 때문에 본인확인 장치를 강구하는 데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피해를 봤을 때 이것이 본인의 의도·과실이 아님을 입증하지 못하면 소비자가 손해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서울YMCA 서영경 정책팀장은 "우선 카드 사용자 자신이 신용카드 및 전표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신속한 피해구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