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대폭락,그 바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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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도(道)를 닦는 '절간(Temple)'에 곧잘 비유된다. 세속적 정치·경제권력과 등을 지고 성스럽게 달러가치를 수호하는 성역을 상징한다. FRB의장은 곧 주지스님이고, 속세의 경제상황이 시끌벅적할 때면 세인들이 알듯말듯한 '법어'를 입가에 흘린다. 굵은 테 안경에다, 서류가방을 겨드랑이에 달랑 끼고 수행원도 없이 '절간'을 드나드는 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의 소박한 자태는 수도승을 연상하고도 남는다.

그가 의장에 취임한 때가 1987년 8월, 그 두달 만에 월가는 '검은 월요일'의 대폭락을 겪었다. 당시 다우지수가 1,739, 그러다 91년에 3,000, 95년 2월에 4,000, 그가 3기 연임된 95년 말 다우지수는 5,500을 기록했다. 당시 그는 "지난 5년여 동안 FRB는 20세기 최대의 자산거품 형성을 알면서도 허용했다"고 혀를 찼었다.

다시 96년 12월에 다우지수가 6,400을 넘어서자 그 유명한 '비이성적 들뜸(irrational exuberance)'이란 명언을 뱉어냈다. 미친 듯 치솟는 거품 주가에 대한 노골적 경고였다. 그럼에도 다우지수는 고공행진을 거듭, 한때 11,000을 넘어섰고, 신경제 기술주식 위주의 나스닥지수는 천정을 뚫고 5,000대로까지 치솟았다.

예일대학의 금융경제학자 로버트 실러가 2년 전 그린스펀의 '법어'를 표제로 딴 저서 『비이성적 들뜸』에서 앞으로 수년내에 1901년, 1929년, 1966년 때와 같은 주가대폭락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을 때만 해도 '무슨 방정이냐'며 모두가 코웃음을 쳤다. 실러는 다우주가가 6,000대로 폭락할 것을 예견했다. 현재 다우지수는 8,000대, 나스닥은 1,300대다.

잇따른 회계부정 여파로 월가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다급해진 부시 대통령이 시장을 안심시키는 '한 말씀'을 주문하자 그린스펀은 최고경영자들의 '전염성 탐욕(infectious greed)'을 문제삼았다. "현세대 경영자들이 지난 세대보다 더 탐욕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탐욕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길과 기회가 사방에 널려 있다"고 개탄했다. 거품과 탐욕을 걷어내 모두가 항심(恒心)을 되찾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제도적 개선을 다그쳤다.

90년대 소위 '기술거품'으로 과다평가된 주식들의 가격하락과 그에 따른 미국달러 약세화는 어차피 불가피하다. 나스닥주가는 이제 바닥이 보이고 다우주가 역시 바닥권까지 근접했다는 분석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세계 투자자들의 미국시장 이탈이 가속될 경우 '6,000대폭락'이 현실화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또한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펀더멘털이 아니라 멘털(심리)이 문제인 것이다. 그린스펀의 '탐욕'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4년여 동안 7백여 미국기업들이 이익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나 회계부정 스캔들은 당분간 꼬리를 물 전망이다. 그때마다 투매와 시장이탈로 과민반응할 경우 '6,000대폭락'은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낙착될 수도 있다. 외양간을 고치고 방벽을 쌓는 데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미국 증시의 주가폭락은 세계 주요 증시의 동반폭락을 몰아오고 전세계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세계의 투자자본이 미국을 이탈해 새로운 둥지를 틀 수 있는 곳도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자칫 '우리 모두가 잃는 게임'이 되기 십상이다. 실러는 '비이성적 들뜸'의 대칭어로 '비이성적 비관(irrational pessimism)'을 들었다. 이 둘간의 가공할 널뛰기를 우리 모두가 막아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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