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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화해를 위한 미디어의 역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화해'를 주제로 열린 제52차 세계언론학대회가 19일 폐막됐다. 세계언론학회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대회에는 각국에서 1천여명의 언론학자들이 참가했고, 닷새간 1천여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특히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16일 열렸던 '미디어를 통한 두 한국의 화해' 세미나(아래 별도기사 참조)에 국내외 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와 관련, 본지는 남북한 화해를 위한 미디어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폐막 하루 전인 18일 독일의 사례를 정리하는 별도 좌담을 마련했다.

김택환=독일 차이트 신문의 대기자 테오 조머는 남북관계를 '고 앤드 스톱(go and stop)'으로 묘사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 2년 후인 지난달 '서해교전'이 터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은.

바이스=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 보도는 다원적이어야 한다. 독일의 경우 분단 20년 만에 정상 회담이 있었고, 다시 20년 후 갑작스러운 통일을 맞게 됐다. 현재 한반도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간장완화를 위한 노력이 우선적이라고 본다.

윤영철=분단 50년 동안 남북한은 이질적인 사회로 변질하고 있다. 한 민족이 각기 다른 정치적 시스템에 의해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이질화되고 있다.한국 언론은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에블린=분단 국가에서 언론은 국민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일상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화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선도해야 한다. 그러나 애국적인 감정에 휩싸여 언론이 북한 주민의 존엄성과 민주주의 과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게라우=독일 언론에서는 통일 논의가 거의 없었다. 누구도 반년 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했던 통일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언론은 통일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것보다 어떻게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김=언론이 통일과 관련해 어떠한 보도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에블린=당시 독일 통일과정에서 동독의 민주화가 중요한가, 통일이 우선적인가 하는 논쟁이 있었다. 좌파든 우파든 이에 대한 컨센서스는 동독 시민의 자유와 민주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서독 언론은 동독 정권의 활동보다 민주화와 동독 시민운동에 대해 우선적 가치를 두었다. 정권 차원보다 시민들의 삶이 보도 중심이었다.

바이스=80년대 독일 방송은 동독과 독일 문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보도를 하고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공영방송은 보수적이고 우파적인 내용과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프로그램을 균형있게 제작했고, 이를 통해 동독 시민들이 간접적으로 통일에 적응했다고 볼 수 있다.

윤=한국에서 민족통일이 지고의 지상과제가 될 경우 통일과 관련한 언론의 역할은 부정적 효과를 보일 수도 있다. 감정에 매몰돼 언론의 역할이 약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게라우=민주주의 과정을 강조하다보면 전체주의 체제가 흔들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내부 단속과 체제 안정에 역점을 두게 된다. 동독 역시 이러한 정책을 폈고, 북한은 더욱 강력한 통제 정치를 하고 있다.

바이스=독일의 경우 좌파인 브란트 정부에 의해 동방정책이 시작됐지만 우파인 콜이 집권한 이후도 동방정책은 지속됐다. 좌파인 브란트가 통일의 씨를 뿌렸다면 우파인 콜이 수확을 한 셈이다.

김=한국 방문과 이번 국제언론학 대회에 대한 총평을 한다면.

바이스=분단국가에서 이론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어떻게 직시하고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나타난 국민 에너지를 모으고, 국가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언론인과 학자의 역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윤=정치가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언론이 사건을 생산하기보다 이것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에블린=대결이냐, 화해냐 하는 이원적인 사고보다 자유로운 정치적 담론이 이뤄지고 이성적으로 토론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그러한 환경이 조성되도록 정치인·언론·학자들이 노력해야 한다.

게라우=분쟁국가에서 언론이 화해에 기여해야 하지만, 목표를 잃거나 혼돈해서는 안된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 시스템의 민주화를 강조해야 한다.

이날 좌담회 참석자들은 이 자리가 이번 대회 어느 세션의 논문 발표나 토론보다 실질적이고 많은 공부가 됐다고 평가했다.

2006년 월드컵과 국제언론학대회 개최지인 독일 베를린에서 다시 만나 이 주제로 토론을 하자는 약속과 함께 좌담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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