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의 '인디언 서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모처럼 일본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년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기업신인도 평가나 연장근무시간 등 다른 지표들도 확실히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과연 오래 갈 수 있을까? 일본의 위정자들이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지금의 회복세는 '인디언 서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본격적인 겨울추위가 닥치기 전 잠깐 반짝 더위가 찾아오는 기상현상처럼 말이다.

일본이 독자적인 성장엔진을 장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외부 동력, 특히 유례없는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에 의존하는 회복세란 매우 취약한 것이다. 달러화의 평가절하는 수출이 주도하고 있는 일본의 회복세를 곧 저지하고 말 것이다. 문제는 모처럼의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일본이 어떤 행보를 취할 것인가에 있다. 해답은 지난 10여년간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처방에 달려 있다.

일본 은행들은 자금을 제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차대조표의 미학에만 집착한 은행들은 거의 시체가 된 부실기업들에 응급처방으로 자금을 공급했고 그 결과 은행 스스로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목숨을 연장하는 동안 신생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와 우량기업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는 차단되고 말았다.

이같은 현상은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문제를 가중시킨다. 조세부담이 늘어날 것을 예상한 소비자들이 저축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총수요는 더욱 위축된다. 은행들은 늘어난 수신고를 비생산적 투자에 허비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같은 구조를 개혁할 수 있을까? 여기엔 세가지 해답이 있다. 첫째,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한다. 은행들에 대한 신규 자금공급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재원으로는 공적자금이 사용돼야 한다. 소생 가능한 은행들과 달리 부실기업들은 이미 때를 놓친 상태다. 정답은 부실기업들에서 보호막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 역할은 은행들의 몫이다. 부실기업을 정리하면 실업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재취업과 재교육에 상당한 자금을 투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바람직하다. 실업자에 대한 구제정책 보다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장려하는 데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재정투자 프로그램에 따라 지난 한해 도로를 닦는 데 국내총생산(GDP)의 8%에 해당하는 4조엔 이상을 쏟아부었다. 이 돈을 노동력을 재배치하는데 필요한 단기자금으로 썼더라면 훨씬 더 생산적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 소유 금융기관들의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 일본의 우체국은 GDP의 절반이자 정부 부채 총액의 3분의1에 해당하는 부채를 안고 있다. 정부 소유의 금융기관들은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민간 금융기관들의 경쟁력을 해치고 있다.

이 모든 일에는 거액의 자금이 들 것이다. 정부 산하 금융기관을 민영화하고 수요 창출책으로 포장된 비효율적 실업자 구제프로그램을 포기한다면 자금을 일부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기선택이다. 비록 완만할지라도 성장이 진행되는 동안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인디언 서머'가 지난 뒤 그렇게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다.

정리=예영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