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위험,기업 스스로 방어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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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지난해와 달리 최근 몇달새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같은 통화가치의 급변은 한국처럼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상황이다. 환율이 급변하면서 금융기관과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뭔가'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문제에 대해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換시장 왜 확대해야 하나

우리가 보는 올바른 접근방법은 외환시장을 심화시키는 것(Market Deepening)이다. 시장을 심화하려면 먼저 정부의 역할은 널뛰기 장세를 막는 데 한정하고, 더 많은 사람이 환(換)거래를 할 수 있도록 시장규모를 키워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들(특히 대기업)이 미래의 환율변동에 대한 헤지(위험회피)를 통해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정부는 보험사나 증권회사에 외환거래를 허용함으로써 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한국이 1997년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이후 아직도 많은 기업이 헤지를 소홀히 하고 있다. 기업들이 헤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에 노출될 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가들로부터의 신뢰도 떨어진다.

그러면 외환시장이 활발하게 작동하도록 할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먼저 정부의 역할이다. 환율이 널뛰기해 외환 거래가 매수나 매도 한 방향으로 치우칠 경우 정부는 시장이 제 기능을 찾을 수 있도록 수급을 조절한다. 이는 정부가 환율을 특정한 목표방향으로 끌고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환율 변동폭을 줄이려 노력해야 하며, 이는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는 어느 나라에서나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수급 조절은 때론 부작용도 가져온다. 환율은 자유롭게 변동해야 시장 참여자들이 수익을 얻을 기회를 제공하게 되고 거래도 촉진한다. 이는 시장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나서면 환율의 급등락은 진정될 수 있지만, 거래를 감소시켜 시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자칫 시장이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일부 기업이 미래의 환율변동에 대처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손쉽게 정부에 의존하려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한국의 많은 수출업자들은 원화 환율이 달러당 1천3백원을 넘을 때 선물환시장에서 달러를 매도해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보다는 높은 환율을 즐기기에 바빴다. 그결과 환율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은 급격한 수익감소를 걱정하며 정부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장본인은 누구인가. 은행들은 환리스크로부터 스스로를 잘 보호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정부의 영향력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대기업들로부터 나온다고 여겨진다. 대기업들은 이제 환리스크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 환율이 예상했던 것과 반대로 움직인다고 해서 정부에 손을 내밀어선 안된다. 물론 기업들에 헤지를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기업들은 헤지를 게을리했을 때 나오는 결과에 대해선 감수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헤지했을 경우와 하지 않았을 경우의 혜택을 동시에 누릴 수는 없다.

정부는 '널뛰기' 잡아야

우리는 한국이 환율변동 때문에 지불해야 할지도 모를 비용을 우려한다. 먼저, 해외 투자가들은 한국이 정부와 재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제시스템에서 정말로 벗어났는지 궁금해한다. 적어도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이런 의심을 살만한 일들이 일부 남아 있다고 본다. 둘째, 헤지를 하지 않는 기업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투자와 소비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조치는 그것이 시장의 작동을 원활히하기 위한 좋은 의도로 출발했다 하더라도 규모가 작은 한국의 외환시장에서 자칫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한국이 금융거래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데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요즘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뭔가'를 해야 한다. 그것은 널뛰는 외환시장을 진정시키고 장기간에 걸쳐 시장을 육성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이제 보다 큰 관심은 기업 쪽에 모아져야 한다. 일부 기업들이 왜 헤지를 게을리 하는지, 그 결과는 어떠할지 등을 놓고 활발히 토론해야 한다. 헤지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헤지를 하지 않아 한국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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