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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63면

얼마 전 개봉된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스피릿'은 말(馬)이 주인공이다. 말의 시각에서 미국의 서부사를 풀어내기 위해 말에 사람의 말(言)대신 표정연기를 시켰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말이 주인공을 맡은 애니메이션은 '스피릿'이 처음이다. 물론 말은 지금까지 많은 애니메이션에 등장했지만 주로 보조역이었고 제대로 된 역할을 맡은 적이 별로 없었다.

제대로 그리기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왜냐하면 미간이 넓은 탓에 두 눈이 원통형 얼굴 양쪽에 붙어 표정을 살리기가 어려운 데다 특유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다이내믹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말만큼 영상문화와 인연이 깊은 동물도 없다. 1826년 프랑스의 화학자 조셉 니에프스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사진 중 하나에도 말을 끌고가는 목동이 등장한다.

1870년대 유명한 사진사였던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는 '말이 달릴 때 네 발이 공중에 다 떠있는지, 아니면 하나라도 붙어있는지'알려달라는 전 주지사의 요청을 받고 달리는 말의 모습을 수십대의 카메라를 이용한 최초의 연속촬영 기법으로 찍어냈다. 이는 영화의 시초가 됐다.

그뒤 디즈니의 '판타지아'(1940)에서 날개 달린 말 페가소스의 가족들로 본격적인 등장을 알렸다.'신데렐라'(50)와 '잠자는 숲속의 미녀'(59)에서는 각각 신데렐라와 왕자를 태우고 가는 보조적인 역할을 했지만 영국 존 할라스 감독의 '동물농장'(54)에서는 자신이 할 일을 목숨을 걸고 완수하는 우직한 '복서'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뒤 '미녀와 야수'(92)에 들어서 말은 좀더 비중있는 조연을 맡게 된다. 특히 '헤라클레스'(97)와 '뮬란'(98), 그리고 드림웍스의 '슈렉'(2001)에서는(당나귀이긴 했지만) 주인공과 죽이 척척 맞는 파트너로 격상되는, 성격이 부여된 모습을 보였다.

'스피릿'에서 말들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드림웍스 제작진은 말전문 수의사 등 동물 전문가의 수업을 듣고 LA기수센터를 수 차례 방문했다.

드림웍스의 수석 애니메이터 제임스 벡스터는 "우리는 이 작업을 하면서 동물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세심히 관찰하고 이를 스크린으로 옮긴,'밤비'를 만들었던 선배들의 엄청난 노고를 새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움직임을 표현하는 장르인 애니메이션. 움직임을 그대로 재생하는 데 이어 성격과 감정까지 집어넣음으로써 애니메이터들은 '창조'라는, 신의 경지에 도전하고 있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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