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잊혀져가 안타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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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요즘 사람들이 제헌절이 무슨 날인지 알기나 하는지…."

54번째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오전. 김인식(金仁湜·90·사진)옹은 노환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제헌의원회관 사무실을 찾았다. 말이 회관 사무실이지 좁은 한옥에 낡은 탁자와 소파 몇 개가 전부다. 제헌절이 다가왔지만 金옹 외에는 찾는 사람이 없어 더욱 썰렁하기만 하다.

金옹은 1948년에 구성된 초대(初代)국회에서 의원을 지냈다. 우리나라의 헌법을 만들어 공포한 제헌의원인 것이다.

당시 金옹과 함께 대한민국의 헌법을 탄생시킨 제헌의원들은 모두 2백9명이지만 생존자는 金옹과 정준(鄭濬·88)옹뿐이다. 그나마 세계도덕재무장운동본부(MRA) 한국지부장으로 있던 鄭옹은 96년 사고를 당해 쓰러진 뒤 의식이 불명확한 상태다.

"나이를 먹어 세세한 일들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무튼 그때는 정말 열심히 일했어. 대한민국의 기틀을 우리 손으로 세운다는 생각에 헌법 공포를 앞두고는 여러 날 밤을 샜지."

이렇게 당시를 회상하던 金옹은 이내 제헌절의 의미를 잊고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10년 전만 해도 제헌절이 이렇지는 않았어. 전국 초등학교에서 제헌절 기념 글짓기라도 하면서 제헌절의 의미를 되새기곤 했었거든. 그런데 이젠 이런 행사도 없어지고 국민들이 7월 17일을 그냥 '빨간날(공휴일)'로만 여기는 것 같아 아쉬워."

실제로 제헌의원들을 국가 원로로 대접하고 국정 운영의 의견을 묻는 일이 몇년 전부터 사라졌다. 최근에는 역대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에서 "제헌의원회관 건물을 내줄 수 없겠느냐"는 의사를 전해오기도 했다고 한다.

"동지들이 전부 가고 이제 딱 둘뿐이라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해. 나까지 가면 제헌(制憲)의 뜻을 기리는 사람은 더 줄어들겠지…."

金옹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과 鄭옹의 명패를 오랫동안 쓰다듬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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