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차고 기침 심할땐 '직업성 천식'의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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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인천의 L가구공장에서 일한 40대 중반의 K씨. 페인트 작업을 시작한지 반년 쯤 지나면서 숨이 차고 기침·가래가 나오는 등 천식증세를 일으켰다. 아주대병원의 진단결과는 직업성 천식. 페인트의 원료인 이소시아네이트란 물질이 K씨에게 천식을 안겨준 것.

대전 H제약회사의 20대 여성은 작업장에서 항생제 가루를 마신 것이 원인이 돼 지난해 7월 직업성 천식 환자로 판정됐다. 이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이 회사 직원 37명을 조사한 결과 5명이 같은 환자로 나타났다.

작업장에서 나오는 먼지·가루·가스·증기 등에 노출돼 천식이란 고질병을 갖게 된 사람이 국내에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선진국의 경우 전체 인구의 약 4%가 천식을 앓고 있으며 이중 약 5%가 직업성 천식이다. 이를 감안하면 국내 성인 남성근로자 2만명 가량이 직업성 천식 환자일 것으로 추정된다(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 내과 이숙영 교수).

그러나 국내에서 2000년까지 직업성 천식으로 판정돼 산재(産災)혜택을 받고 있는 환자는 1백25명에 불과하다. 성별로는 남성(77%)·지역별로는 인천(54%·가구공장이 많기 때문으로 추정)이 많았다.

증상은 일반 천식과 같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홍천수 교수는 "숨이 차고 기침을 심하게 하며 비염(콧물·재채기)증상을 보인다"며 "눈이 가렵고 결막염이 생기며 피부에 가려움증·두드러기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내과 박해심 교수는 "대부분 원인물질에 처음 노출된 지 1~2년 내(이르면 2~6개월)에 증상이 나타난다"며 "10년 후에 증상이 시작되는 사람도 간혹 있다"고 지적했다.

◇직업성 천식 유발물질=3백종 이상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이소시아네이트. 국내 직업성 천식 환자(산재 인정)의 43%가 이 물질 때문에 병을 얻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이소시아네이트를 도료(塗料)로 사용하는 목재가공·가구제조업 종사자 1백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2%가 직업성 천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폴리우레탄·페인트·가구·냉장고·냉동고·악기·지퍼·자동차·화공약품·플라스틱 생산공장 종사자는 이 물질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독일에서 개발된 반응성(反應性)염료도 악명높은 직업성 천식 유발물질.국내 직업성 천식환자의 41%가 이 염료에 기인한다.

의류 염색에 주로 쓰이는 이 염료는 경인·울산지역에 생산공장이 많다. 국내 반응성 염료공장 6곳을 조사(5백53명)한 결과 6~14%가 직업성 천식 환자였다.

전남대 산업의학과 문재동 교수는 "밀가루·꽃가루·카레가루·메밀가루·쌀겨 등 식물성 가루가 제빵공장 종업원·쌀가게 주인 등에게 고통을 안겨준 적도 있다"고 전했다.

또 실험실 종사자는 토끼털·쥐털, 목재소 직원은 나무톱밥, 도금공장 직원은 니켈·크롬 등 금속가루를 주의해야 한다.

◇조기 진단이 중요=일찍 찾아내 바로 대처하면 1~2년내 완치가 가능하다. 치료는 약물로 한다.

특히 이소시아네이트, 반응성 염료에 노출된 경우 조기진단이 중요하다.그러나 진단이 늦어지면 절반 이상은 평생 천식을 안고 살아야 한다.

진단은 해당 공장을 방문해 의심되는 천식 원인물질을 밝히고 그 농도를 재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어 환자의 피 속에 천식 원인물질에 대한 항체가 있는지 검사한다. 해당 천식물질에 노출됐을 때 천식증세가 나타나는지도 살핀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최용휴 책임연구원은 "직업성 천식으로 최종 판정되면 산재 환자로 인정된다"며 "매년 2백만원 정도 드는 약값 등 진료비 부담이 없어지고 생활보조비가 계속 지원된다"고 말했다.

직업성 천식환자는 직업을 바꾸거나 부서배치를 새로 받아야 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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