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의 유혹… 달콤한 '絃의 프로포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32·www.cheeyun.net)씨가 이달 초 뉴욕 맨해튼 52번가 아바타 스튜디오에서 새 음반을 녹음했다.

1996년 런던필과 랄로의'스페인 교향곡'과 생상 협주곡을 녹음한 후 6년간의 침묵을 깬 의욕적인 레코딩이다. 통산 여섯 번째 앨범이지만 크로스오버로는 첫 앨범이다. 타이틀은 '김지연의 프로포즈'.

김씨는 최근 신세대 바이올리니스트의 추격으로 입지가 약간 좁아지긴 했지만 정경화와 장영주의 세대차를 메우는 한국의 '대표선수'임에는 틀림없다. 크로스오버 바람이 불던 5년전부터 세계 굴지의 음반사에서 바네사 메이처럼 크로스오버로 전향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쇄도했지만 거절했던 그였다. 크로스오버 작업도 성숙한 음악세계를 거친 연후에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소프라노 조수미의 크로스오버 앨범'온리 러브'를 총지휘한 작곡가 에토레 스트라타가 프로듀서를 맡았고, 안트리오의'안플러그드'앨범에 참가한 줄리아드 음대 출신의 젊은 작곡가 켄지 번치가 편곡을 맡았다. 김씨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일본 태생의 피아니스트 아키라 에구치, 뉴욕 재즈계의 거물인 드럼 주자 그레이디 테이트도 녹음에 참가했다.

이번 앨범은 김씨가 이미 5장의 CD를 낸 일본 데논사에서도 라이선스를 요청, 오는 8월 중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매될 예정이다. 수록곡은 오는 9월 29일 예술의전당 독주회에서도 일부 선보일 계획이다. 음반 녹음을 끝낸 김씨에게 뉴욕 자택으로 전화를 걸었다.

-레퍼토리는 직접 골랐나.

"음반 제작사(IDC)가 고른 곡이 대부분이지만 '낙원의 이방인'이라는 타이틀로도 널리 알려진 보로딘의 '이고르공' 중 '달단 사람들의 춤'과 어빙 벌린 메들리, 시크릿 가든,영화'카사블랑카'에 나오는 '애즈 타임 고즈 바이'등은 나의 선곡이다. 존 배리의 '섬웨어 인 타임'은 미국에 처음 와서 TV에서 본 로맨스 영화다."

-녹음을 끝낸 소감은.

"힘들고 매우 바빴지만 보람있는 작업이었다. 내 음반을 듣는 것을 싫어하는 편인데 이번엔 미리 CD로 만들어 여러 번 들어봐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편곡자 켄지 번치와는 어떻게 만났나.

"줄리아드 음대 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라 악기의 개성을 잘 살려낸다. 편곡 과정에 내 아이디어를 반영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평소에 클래식 외에 즐겨 듣는 장르는.

"리듬 앤드 블루스와 재즈·팝을 좋아한다. 헨리 맨시니의'문 리버'나 어릴 때 엄마가 늘 불러주시던 멘델스존의'노래의 날개 위에'도 연주하고 싶다."

-크로스오버가 '클래식 음악의 서커스화'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일부 평론가들은'크로스오버가 클래식의 미래라면 이제 모두 자살할 때'라고 극단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다.

"지나친 순수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번스타인·거슈윈 등 미국 작곡가의 음악은 그 자체가 크로스오버다. 클래식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급한다는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물론 첫 크로스오버 앨범이라 클래식 녹음보다 더 신경이 쓰였고 준비기간이 길었다. 녹음도 5일이나 걸렸다."

-유난히 성악곡이 많이 띈다.

"바이올린도 호흡이나 프레이징(악구의 처리)이 노래할 때와 비슷하기 때문에 성악곡이 훨씬 쉽다. 하지만 가사가 없어서 같은 멜로디를 반복할 때는 편곡을 달리하면서 음색도 다르게 내야 한다."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의 크로스오버 앨범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이츠하크 펄만이 97년에 발표한 '시네마 세레나데'1집 중에 나오는 엔리오 모리코네의'시네마 천국'이다. 91년 KBS교향악단과 처음 협연하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영화를 보며 무척 울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 넣었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체로 로맨틱하고 애절한 곡이 많다. 하지만 악기 편성에 따라 실내악·재즈·집시음악 등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카치니의'아베 마리아', 헨델의'울게 하소서', 스비리도프의'올드 로망스'는 현악5중주와 하프, 발프의'마블 홀'과 모리코네의'시네마 천국'은 피아노 5중주로 편곡했다. 피아졸라의'오블리비온',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사랑의 찬가' 등은 기타와 드럼을 보태 재즈 분위기를 냈다."

-향후 연주계획은.

"라비니아·애스펀 음악제에 참가한 후 9월 29일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하고 10월 3~4일 서울, 10월 24일 상하이(上海)에서 키타옌코 지휘의 KBS교향악단과 협연한다. 10월 7일과 11일 대구·충주에서도 독주회를 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