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주무·코치 호흡척척 金감독 마음껏 능력 발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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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김창백 감독은 중국어를 거의 못한다.중국 물정에도 어둡다. 현지인들의 도움이 없으면 쇼핑도 제대로 못할 정도다. 그런데도 '중국 여자하키의 역사를 다시 쓴 감독'으로 평가받게 된 비결은 뭘까.

金감독은 서슴없이 '한·중의 팀워크'를 꼽았다.

金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조선족 통역 이해응(海鷹·29), 팀 주무인 하이셴(海線·43), 코치 양훙빙(紅兵·36) 등 스태프 세 명이 '마귀 감독'을 만들어낸 무대 뒤의 주역들이다.

"중국에서 축구·배구·하키 팀을 맡았던 한국인 감독은 여럿이에요.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통역이 말썽을 부렸거나 중국인 스태프와 융합하지 못했던 탓이지요."

金감독의 설명이다.

金감독 역시 부임 초기엔 '사람 고생'을 했다. 특히 당시의 남자 코치와는 매일 신경전을 벌였다. 그 코치는 "당신이 뭘 안다고 나서느냐"는 식의 무례함으로 일관했다. 불같은 성격의 金감독이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결국 그 코치는 떠났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통역이었다. 통역은 金감독의 거칠고 험한 말을 곱게 다듬어 부드럽고 매끄럽게 전달하는 데는 선수다. 金감독에게 보배같은 존재다. 金감독이 "진작 만났으면 우리팀의 성적이 훨씬 더 나아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할 정도다. 그는 金감독과 하루 종일 붙어다닌다.

海주무는 체육총국에서 파견된 국무원 부국장급의 간부다. 여자핸드볼 대표선수로 코트를 누볐던 그녀지만 지금은 전지훈련·장비 조달·금전 지출 등 갖은 잡무를 군소리 없이 해낸다. 金감독과 체육당국과의 협의창구도 그녀다. 金감독이 온갖 구설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海주무 덕이다.

코치는 '하키에 인생을 건' 여인이다. 시드니 올림픽 당시 여자 대표팀 주장을 맡아 선수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 金감독이 상처를 내면 코치는 어루만진다. 코치의 부드러운 '내조'없이 金감독이 이국(異國)선수들을 제대로 조련해낼 수 있었을까.

"훈련장에선 내 마음대로예요. 하지만 이들의 소리없는 협조가 없었다면 오늘이 없었을 겁니다."

金감독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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