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과 골목길, 그 사이 - 낙산성곽과 골목길 야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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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낙산공원 가는 길.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예뻐진 골목길과 오래된 동네의 풍경을 담으려는 이들의 출사지로 동네는 어느새 유명인사가 됐다. 제일 처음 낙산공원을 찾았을 때가 저녁이었는데 대학로의 카페도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을 때다. 낙산공원으로 오
르는 언덕길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고 늦은 여름밤의 더위가 몸을 데워갈 때쯤, 낙산공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큰 가로등이 버티고 선 낙산공원의 입구는 밤을 잊은 듯 빛나고 있었다. 낙산공원의 계단을 오르자 광장에는 아이와 함께 산책 나온 가족들과 공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젊은 연인, 운동하는 동네 아저씨, 나름의 방식으로 공원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가득했고, 낙산공원의 밤은 그렇게 낮보다 더 활기로 넘쳤다.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야경
낙산공원은 이름처럼 지대가 높은 산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 시내 야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남산이 화려한 도심 야경을 비춘다면, 낙산의 야경은 도심 속 주택가를 비추는 소탈한 매력이 있다. 광장을 가로질러 계단을 오르면 나선형 언덕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쭉 걸으며 산책도 하고 야경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전망대’라고 하여 탁 트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도 있긴 하지만,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어른어른하게 비치는 불빛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낙산은 서울성곽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길이기도 하다. 성곽을 따라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공원 꼭대기에 오르면 아름다운 띠를 이루는 성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지금은 성곽의 이름을 불러주기보다 공원을 찾는 이들의 쉼터와 추억이 되어주고 있는 낙산성곽. 세련된 건물들이 즐비한 서울 도심 가운데 자신을 낮추어 멋진 배경이 되어주어 주는 이곳이 너무 고맙기만 하다. 성곽에 올라 맥주 한 모금 마셔본 이라면, 그때 식도를 타고 내려가던 차갑고 달콤하기까지 한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반드시 또 찾게 되는 그런 곳이다.

이화동 골목길의 밤
만약, 낙산공원을 혼자 오르지 않게 된다면 이화동 골목길도 꼭 들러보라 말하고 싶다. 무질서하게 솟은 노란 가로등의 불빛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재밌는 풍경을 발견하게 된다. 낡고 때가 묻은 담벼락, 칠이 벗겨진 대문은 어둠에 묻혀서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
에는 미로처럼 얽힌 삶의 흔적만이 내려앉아 있다. 불이 켜진 구멍가게, 11시가 넘은 시각에도 ‘밤늦은 시간까지 이곳을 들렀던 손님은 누구일까’ 하고 궁금하게 만들었던 미용실, 드르륵드르륵, 사각사각 재봉틀 돌리는 소리. 동대문 시장이 가까워 유난히 의류 관련된 소규모 업체가 많다는 이곳 동네는 살아 있는 다큐멘터리가 펼쳐지는 골목이다.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특별한 야경 길, 낙산성곽 가는 그 길.

View Point 낙산성곽의 돌담 위에 오르면 단층 주택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골목길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남산타워와 종로가 내려다보이는 도심 야경과 대조적이다. 또한 공원의 정자를 지나 이화동으로 가는 길 왼편으로 샛길이 하나 있는데, 이곳 벤치에 앉으면 마치 영화 스크린을 보듯 서울 시내 풍경이 프레임 안에 가득 찬다.

기획_오지연 기자 사진_박유빈, 장진영 기자
레몬트리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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