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물이 되어보니… 아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떡갈나무 한 그루를 보자. 여우의 입장에서 떡갈나무는 집이다. 여우는 나무뿌리 사이에 구멍을 파고 제 짝과 새끼들을 보호하고, 먹고 자고 쉬는 장소로 쓴다. 그러나 여우에게 의미있는 공간은 제 눈높이보다 낮은 곳인 땅속이나 지표면뿐이다.

나뭇가지가 뒤엉킨 나무 위쪽으로 가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올빼미의 집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올빼미는 낮에는 보호색으로 나무 색깔과 어우러져 얌전히 쉬고 있고, 밤에는 3백60도를 다 관찰하며 먹잇감을 포획해 가져와 식사를 한다. 올빼미에게 떡갈나무는 피신처이며 식당이다.

사람들은 어떤가. 미국 인디언들은 떡갈나무를 힘과 장수의 상징으로 숭배하고 먹을거리로 삼았다고 한다. 도토리를 물에 씻어 빻아서 빵을 만들고 수프로도 끓여 먹었다고 한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인도 도토리묵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떡갈나무 한 그루를 놓고도 동물과 사람의 쓰임과 인식에 차이가 난다.

교사이자 생태학·고고학을 공부하는 주디스 콜, 미국 출판계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한 허버트 콜 부부는 사람과 동물·곤충의 '다름'을 관찰해 책을 썼다. 작위적인 실험실 환경 속이 아니라 자연 상태 그대로에서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동물의 입장이 되어 보는 모험을 통해서였다. 이런 연구 접근 방법은 동물행동학자들의 철학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책에서처럼 개미의 공간 감각이 어떠한지 알아보기 위해 상자·돌덩이로 장애물을 만들어 놓고 눈을 가려 보자. 바보처럼 보이겠지만 잘 휘는 플라스틱 막대기 두개를 더듬이처럼 머리에 붙여 보자.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면 장애물에 닿았을 때 진동으로 판단할 수 있을 터이고 우리는 개미 세계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다.

이렇게 곤충을 비롯한 동물이 경험하는 주변 생물 세계를 움벨트(Umwelt)라고 한다. 인간들이 쓰는 세계·자연 따위의 단어로는 설명하기 힘들기에 1957년 에스토니아 출신 생리학자 야곱 폰 웩스쿨이 만든 말이다. 이 책은 동물의 생활 리듬, 사회 세계, 공간·시간 감각 등 다양한 움벨트를 설명해 준다.

1백년 가까이 사는 거북이와 하루밖에 못 사는 나방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다르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포유동물이 우연히 지나갈 때만 활동을 시작하는 진드기 세계의 시간도 독특하다. 한 동물연구소에는 18년 동안이나 굶주린 채 꼼짝않고 살고 있는 진드기도 있다.

이 책은 폰 프리슈·로렌츠·틴버겐 등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성과를 쉽게 설명하고 돈 한푼 들이지 않는 실험들을 소개하며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만든다. 1318세대를 겨냥한 사계절 교양문고 시리즈의 첫권으로 동물행동학의 역사와 방법을 자연스레 알려주고 있다.

홍수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