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 대재앙] '두 아이 중 누굴 살리나' 애끊는 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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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지진해일로 태국 푸껫에서 실종됐던 스웨덴 어린이가 아빠를 찾았다. 푸껫의 한 병원에서 어린이의 아빠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푸껫 AP = 연합]

▶ 29일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매트리스에 얹혀 표류하던 생후 20일 된 아이 가 구조된 뒤 엄마의 입맞춤을 받고 있다.[페낭 AP=연합]

'두 아이와 물에 빠졌는데 한 아이의 손을 놓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누구를 택할 것인가'.

부모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악몽 같은 순간을 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 사태에서 직접 경험한 호주인 어머니의 이야기를 AFP 통신이 30일 소개했다. 지난 26일 오전 태국 푸껫의 한 호텔 수영장. 질리언 설은 큰아들 라키(5).둘째아들 블레이크(20개월)와 함께 있다 거대한 해일이 들이닥치자 모두 물에 휩쓸렸다.

간신히 두 아이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가라앉지 않으려 발버둥치면서 점점 힘이 빠졌다. 두 아이 모두 살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모두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큰아들을 주위에 있던 어느 부인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로부터 "아드님을 끝까지 붙들지 못해 죄송해요"라는 사과의 말을 듣고 절망에 빠졌다. 아버지는 기저귀를 가지러 방에 올라갔다가 발코니에서 이 끔찍한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두 번째 파도가 몰려오고 아들이 물속에 빠지는 것을 봤다. 내 인생에 정말 이렇게 끔찍한 순간은 없었다"고 떠올렸다.

설 부부는 미친 듯이 아들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몇 시간 만에 해안경비원의 품에 안겨 있는 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라키는 호텔 로비의 기둥을 붙잡고 매달려 있다가 물이 빠지면서 구조됐다. 라키는 "엄마를 부르며 한참 울다가 지쳐서 더 이상 안 울었다"며 "손은 온통 흙투성이고 옷은 빨아야 한다"고 천진스럽게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수영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물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큰아들과 갓난아기를 데리고 무사히 살아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매트리스.문짝 매달려 간신히 익사 면해

기적 같은 생존 이야기들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13세 인도 소녀 메그나 라지셰카르는 부서진 문짝에 의지해 이틀 동안 떠다니다 물이 빠진 뒤 무사히 해변에 안착해 살았다. 그러나 함께 휩쓸려 나간 부모는 안타깝게도 모두 숨졌다고 인도 힌두스탄 타임스가 29일 보도했다.

태국 카오락의 해변 호텔에 있던 홍콩인 부부도 매트리스에 매달려 6시간 동안 표류하다 구조됐다.

말레이시아 페낭섬에서는 매트리스 위에서 자고 있던 생후 20일 된 아기가 바다로 떠내려가다 어머니에 의해 구조됐다고 말레이시아 관영 베르나마 통신이 전했다. 아기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음식점 뒷방에서 자다가 해일에 휩쓸렸으나 울음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달려가 구해냈다.

보트를 타고 낚시하러 갔다가 해일에 휩쓸린 스리랑카인은 뒤집힌 보트에 매달려 사흘간 사투를 벌인 끝에 지나가던 공군 헬기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고립된 주민들에게 비상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상공을 지나던 헬기가 보트를 잡고 허우적거리던 그를 발견한 것이다.

태국 해변에 있던 어린이 가운데 일부는 마침 해변 관광지에 있던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현장을 빠져 나와 참사를 면하기도 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또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의 물에 잠긴 마을에서 20대 여성이 뱀의 인도를 받아 수영을 해 고지대로 피신할 수 있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 여성은 "이웃집 쌍둥이 둘을 등에 업고 급류 속을 헤엄치며 빠져 나올 때 커다란 뱀을 발견해 따라갔더니 제방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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