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최철한 - 이세돌 '협공작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 상상을 넘어서는 치열한 육박전으로 바둑판을 피로 물들였던 최철한9단(右)과 창하오9단이 응씨배 결승 2국이 끝난 뒤 복기하고 있다(사진 왼쪽). 응씨배 바둑 해설을 맡아 창하오의 승부호흡을 익히며 도요타 덴소배 결승에 대비한 이세돌9단(사진 오른쪽).

응씨배(우승상금 40만달러)와 도요타덴소배(우승상금 3000만엔).

한국과 중국이 정면으로 맞선 두개의 메이저급 세계대회 결승전이 세밑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최철한9단과 창하오(常昊)9단이 26, 28일 양일간 치른 응씨배 1, 2국은 1대1. 1국을 진 창하오가 2국에서 승리해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동안 대회를 생중계한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 사이버오로는 동시 접속자가 3만명에 달했고 이 중 1만9000여명은 중국인이었다.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년 1월 5일부터 이세돌9단과 창하오9단의 도요타 덴소배 결승전이 도쿄(東京)에서 열린다. 이 대회는 5~8일 3번기가 단번에 펼쳐진다.

한국의 신진고수 두 사람 사이에서 창하오가 협공당하는 형국이어서 중국의 응원은 어느 때보다 열렬하게 전개되고 있다. 창하오의 어깨는 무겁다. 그러나 최철한-이세돌의 어깨 역시 무겁다. 한국 바둑의 새로운 수호자로 나선 이 두 사람은 이번 대결의 승자가 이창호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대두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단 두개의 결승전이지만 여기엔 한.중 바둑사와 세계바둑의 판도를 좌우하는 중대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중국은 1995년 마샤오춘(馬曉春)이 후지쓰배에서 우승한 이래 무려 9년간 준우승만 거듭했고 창하오9단 역시 조훈현-이창호 두 사제에게 가로막혀 결승전에서만 다섯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중국의 우승에 대한 염원은 그만큼 절실하다.

그래서 이번엔 중국위기협회 천쭈더(陳祖德)주석이나 중국기원 왕루난(王如南)원장까지 진두에 나서서 "중국바둑은 결코 한국보다 약하지 않다. 더구나 이번엔 이창호도 없지 않은가"라고 독려하며 창하오의 결승전 준비를 지원해 왔다.

26일 시작된 응씨배 결승에 앞서 창하오가 토해낸 한마디는 자못 비장감마저 풍기고 있었다. 그는 "응씨배는 돌아가신 잉창치(應昌期)선생이 중국을 위해 만든 대회인데 중국은 지난 16년간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중국은 응씨배에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하며 기필코 우승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철한 대 창하오의 응씨배 결승 1, 2국은 시종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난타전의 연속이었다. 최철한의 장점이 파워와 전투력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임에도 그동안 최철한을 깊이 연구해온 창하오는 예상을 뒤엎고 사납기 짝이 없는 전면전으로 나왔고 어쨌든 적지에서 1대1을 만들었으니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최철한은 올해 일직선으로 정상까지 치고올라간 불과 19세의 성장하는 기사다. 나머지 결승전은 내년 3월 베이징(北京)에서 치러지는데 그때쯤이면 최철한은 더욱 강한 기사로 변해 있을 게 틀림없다.

발군의 실력에도 불구하고 기분파적 즉흥성이 불안감으로 지목되던 이세돌9단도 요즘 달라졌다. 그는 응씨배 동안 인터넷 사이트 타이젬의 해설을 맡아 온종일 대국을 분석했다. 표면적으로 최철한을 성원한다는 것이 해설자가 된 이유였지만 창하오의 장단점과 승부호흡을 피부로 느낀다는 또다른 목적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창호9단의 뒤를 이어 세계바둑의 왕좌 자리를 차지하려는 이세돌과 최철한, 그리고 한국바둑을 꺾어 반드시 중국의 한을 풀어보려는 창하오. 온몸을 불사르는 듯한 이들의 삼각대결은 그래서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