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억 이상 들인 우주적 농담 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일반적으로 1편만한 속편이 없다고들 한다. '터미네이터2'같은 예외도 있지만 가령 '미션 임파셔블 2''배트맨 포에버''무서운 영화2'등 '청출어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비평가와 매니어의 냉소를 사는 데 그친 속편들이 얼마나 많은가.

윌 스미스·토미 리 존스 주연의 코믹 SF영화 '멘 인 블랙'(1997년)도 속편이 극복하기엔 너무나 큰 산 중의 하나다.

전세계적으로 거둬들인 5억8천만달러(약 7천5백억원)가 넘는 흥행 수익은 둘째치더라도, '지구상에 외계인들이 정체를 감춘 채 섞여 살고 있으며, 검은 양복을 입은 비밀 요원 멘 인 블랙(MIB)이 이들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1편의 설정이 워낙 특출했던 탓에 '멘 인 블랙2'는 시작부터 몇점 깔고 둬야 하는 바둑 대국처럼 보인다.

그런 부담감을 의식해서였을까. 배리 소넨필드 감독과 컬럼비아사는 1편을 극복하겠다는 야심보다는 유머를 좀 더 강화하고 말랑말랑한 연애담을 끼워넣어 '개인기'를 발휘하는 쪽을 택한 듯하다.

두 주연 배우의 얄미우리만치 완벽한 연기는 이렇듯 줄거리 상의 큰 변화보다는 스타일 강화에 주력한 감독의 의도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한 마디로 '멘 인 블랙2'는 아주 잘 만들어진, 유쾌한 속편이다.

1편 제작비의 딱 두배(1억8천만달러)를 들인 속편은 1편의 끝부분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떠나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지워달라고 요청한 케이(토미 리 존스)가 평범한 우체국장 노릇을 하며 산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제이(윌 스미스) 혼자 고군분투하지만 25년 전 MIB에게 당한 복수를 하러 돌아온 외계인 설리나(라라 플린 보일)의 만행 앞에선 역부족이다.

제이는 기억 재생기로 케이의 기억을 되찾아준 뒤 함께 지구 살리기에 나선다.

데뷔작인 '애덤스 패밀리'로 특유의 블랙 유머 감각을 한껏 과시했던 소넨필드 감독은 할리우드의 영화적 관습을 자양분 삼아 마구 비튼다.

임무를 수행하면서 나누는 제이와 케이의 재담은 스크루볼 코미디에 등장하는 티격태격하며 싸우는 연인들의 그것과 흡사하다.

지구에 착륙한 설리나가 잡지의 속옷 광고를 참조해 거듭난 섹시한 미녀상은 비록 금발 미녀는 아니지만 설리나의 파괴적인 속성과 더불어 작용하면서 필름 누아르의 팜 파탈(요부)을 떠올리게 한다.

드넓은 은하계도 알고 보면 외계인들의 손바닥 안에서 노는 주사위였다는 전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익히 알려진 감독의 '우주적'인 유머 던지기도 여전하다.

작은 사물함 안에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합창하는 외계인 나라 국민들이 살고 있다든가, 오프라 윈프리를 놓고 외계인들이 "시카고에 정착한 우리 친구"라고 말한다든가, 제이와 케이가 "세상을 넓게 보라!"며 활짝 문을 열어젖히니 그 문 역시 거대한 구조물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든가 하는 감독의 '농담'을 그저 사소한 것으로 보고 넘기기엔 스케일이 정말 크다. 11일 개봉. 12세 관람가.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