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전 차관 끝까지 고사 … 새 홍보수석 결국 발표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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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후반기를 위한 ‘제3기 이명박 청와대’의 진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3선 의원 조합인 ‘임태희 대통령실장-정진석 정무수석’ 라인, 56년생 동갑인 ‘임태희-백용호’ 투톱 실장, 장수 수석들의 퇴진과 새 인물 수혈 등이 특징이다. 당초 예상보다 파격적인 정무 라인이 구축된 건 임태희 실장 내정자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정진석 카드’를 이 대통령에게 건의한 사람이 바로 임 내정자다. ‘여의도 정치권과의 소통 복원’ ‘청와대의 정무 역량 강화’란 이 대통령 구상을 실현시킬 적임자로 임 내정자는 일찌감치 정 의원을 염두에 뒀고, 실장에 내정되자마자 이 대통령에게 이를 제안했다고 한다. 당초 현역 의원 출신인 임 내정자가 기용되면서 청와대 내엔 “대통령실장이 현역 의원인데 정무수석까지 꼭 국회의원 출신일 필요가 있겠느냐. 정무적인 기획력만 갖추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임 내정자의 건의를 받아들여 3선 대통령실장-3선 정무수석의 조합을 짰다.

과거 1, 2기 때와 비교하면 ‘임태희-정진석’의 색깔은 더 뚜렷하다. 임 내정자는 한나라당에서, 정 내정자는 자민련·국민중심당·한나라당에서 각종 요직을 거친 관록의 정치인이다. 대통령실장-정무수석만 비교했을 때 정권 출범 때인 1기 청와대의 ‘류우익-박재완’, 2기 때의 ‘정정길-박형준’ 카드는 모두 ‘교수 출신 대통령실장- 교수·초선 의원 출신 정무수석’의 조합이었다. 또 임 실장 내정자와 정 수석 내정자 둘 다 친이계와 친박계를 넘나드는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커리어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전혀 다른 진용”이란 평가가 나온다.

54세 동갑인 ‘임태희-백용호’ 투톱은 2기 때의 ‘정정길(68)-윤진식(64)’ 투톱 때보다 합산 나이가 24세나 젊다. 젊은 청와대를 만들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당초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의 정책실장 기용 가능성도 있었지만, 쇄신의 의미를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막판에 방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도 백 내정자와 막판까지 경합했다. 하지만 곽 위원장은 초대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경력 때문에 ‘회전문 인사’란 비판을 우려해 제외됐다고 한다.

◆홍보수석 발표 못한 까닭=이날 발표된 청와대 인선은 인물난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홍보수석에 사실상 내정 단계까지 갔던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의 기용이 불발된 게 대표적이다. 유 전 차관은 사행성 게임인 ‘바다 이야기’ 논란 때 게임 허가에 반대했고, 또 노무현 정부 말기에 낙하산 인사 압력을 거부하다가 경질된 인물이다. 당시 청와대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이 유 전 차관에게 “배를 째드리죠”라고 말했다는 논란은 유명하다. 하지만 홍보수석직을 제안받은 유 전 차관은 “맡을 생각이 없다”며 고사했고,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직접 설득에 나섰지만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는 일단 유 전 차관을 더 설득하면서 다른 대안을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당초 박선규 대변인은 12일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후에 인선 내용을 일괄 발표한다”고 말했지만, 본지를 비롯한 몇몇 언론이 인선 내용을 미리 보도하자 하룻밤 사이에 일정이 앞당겨졌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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