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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읽는 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시집 한 권 읽습니다. 지난 6월은 참으로 벅찼습니다. 온누리와 마음 마음을 벌겋게 달구며 우리는 '우리'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이 더할 수 없이 깨끗합니다. 그 맑은 하늘에 오랜만에 구름도 본디의 색깔로 여유롭습니다. 더불어 저도 차분하게 신경림 시인의 신작 시집 『뿔』을 읽습니다.

시집 첫번째로 실린 위 시 '떠도는 자의 노래'를 읽으며 저는 '아, 이 시는 신경림 시인의 자화상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 느낌은 곧바로 申시인뿐 아니라 모든 시인의 그것이요, 그리운 것을 찾아 떠도는 사람 본연의 슬프고 아름다운, 고픈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장을 덮으니 정희성 시인은 뒤 표지에서 이 시집을 이렇게 보고 있더군요.

"오래 되고 낡은 것들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 떠돌 수밖에 없는 운명의 시인. 우리는 어느덧 그의 아픔과 슬픔과 쓸쓸함까지도 아름다움으로 느끼고 사랑해오지 않았던가. 떠돌며 그가 따뜻한 눈길을 던져주는 모든 보잘것없는 것들이 우리의 슬픔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보아오지 않았던가"라고.

그렇습니다. 시는 곧 사람의 숙명입니다. 일상의 틀 속에 거주한다 할지라도 마음은 영원히 떠돌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슬프고 아름다운 것이 우리들 아니겠습니까. 그래 우리는 개와 고양이 등 다른 무엇이 아닌 인간임을 다시금 자부케 하는 것이 시 아니겠습니까.

그런 마음에서 중앙일보는 '詩가 있는 아침'이란 난을 두고 매일 아침 시 한구절과 함께 촌평을 싣고 있습니다. 좋고 나쁜, 울컥 화가 치미는 세상사가 가득 실려 숨가쁜 활자의 숲 속에 인간 본디 모습의 쉼터를 독자 여러분께 마련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시인 필자를 몇개월 만에 바꿔가며 4년째 싣고 있는 '시가 있는 아침'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반응은 기대 이상입니다. 매일 아침 그 난을 오려 스크랩해 두고두고 읽으신다는 독자분들의 격려 메시지도 많습니다. 혹 오자나 탈자가 나면 바로잡아주는 분들도, 시가 부분 인용된 경우는 그 시가 실린 시집을 묻는 전화도 많습니다. 시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호응 덕분에 다른 몇몇 신문도 시나 시와 함께 촌평을 싣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가 있는 아침'에 대한 호된 질책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개운한 아침에 보기엔 너무 음습하거나 상스런 시들이 실리는 날에는 어김없이 질책이 들어옵니다. 인용한 시에 표절 혐의가 있으면 날카로운 지적도 들어옵니다. 그래서 중앙일보는 시인 필자 선정에 더욱 조심하고 있으며 그런 질책이 들어오면 그대로 필자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매서운 질책 더욱 많이 주십시오. 다 시를 사랑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독자 여러분과 함께 중앙일보는 '시가 있는 아침'을 더욱 시다운 난, 시 같은 세상으로 꾸미겠습니다. 시가 있는 아침은 꿈이 있는 세상이요, 꿈을 찾아 마음만이라도 흰구름같이 떠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그 무엇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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