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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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세기 독일의 클라우제비츠가 쓴 '전쟁론'이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과 아시아 각국 사관학교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지정된 이유는 전쟁 경험에 기초를 둔 고전적인 전쟁 철학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과거의 전쟁을 통해 현재의 많은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런 과정들이 경험과학에서 최대의 증명력을 가지며 전쟁술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손자 병법(兵法)도 2천5백년의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한자 문화권의 병법서로 각광을 받아 왔다. 미국과 유럽의 군 관계자들도 전술 전략을 익히는 데 크게 참고하는 주요 자료가 되었다. 이 병법은 적군과 아군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 판단하는 일을 제1원칙으로 삼으라고 지휘관에게 요구하고 있다.

동·서양의 각종 병법서들은 오늘날 기업 경영의 밑바닥을 다지는 데 귀를 기울여야 할 숱한 교훈들을 던져준다. 주요 컨설팅 업체들이 취급하는 상품들이란 다름 아닌 전쟁에서의 전략과 전술에 관한 것이다. 현대적인 컨설팅 기법들이 태동한 것은 20세기 초 세계대전의 와중에서였다. 미 해군의 첩보작전과 기습공격, 간부 리더십 교육, 군수관리 등에서 많은 기법들을 연구해 기업 경영에 원용하도록 자문했다.

20세기 후반 일류 컨설팅 회사로 성장한 매킨지가 흔들리고 있다. 도대체 매킨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매킨지로부터 컨설팅을 받아온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경영 전략 훈수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매킨지의 불운은 그의 고객이었던 스위스 에어의 파산에서 시작되었다. 엔론을 비롯해 K마트, 글로벌 크로싱 등도 파산하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최근에 발행된 비즈니스 위크지는 매킨지가 고객인 유명기업과의 오랜 밀월관계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엄격한 자문이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닷컴 기업들의 붕괴가 잇따르면서 컨설팅 수요도 크게 떨어졌다. 국내에 진출하고 있는 외국계 컨설팅 업체들도 예전 같지 않다. 개인적인 인연으로 특정 기업의 컨설팅을 맡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경영진단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방법론 제시에 실망도 크다. 외국 업체에 컨설팅 업무를 맡겨 어물쩍 경영위기를 넘어가려는 회사간부들도 있다. 이제는 컨설팅 업체를 경영진단하는 컨설팅이 필요해졌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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