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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희곡 ‘아타미살인사건’ 작가 김봉웅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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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재일한국인 2세로서 연극·영화·소설 등 다방면에 걸쳐 예술적 역량을 발휘해 온 김봉웅(일본 필명 쓰카 고헤이·사진)씨가 10일 오전 11시쯤 일본 지바(千葉)현 가모가와(鴨川)시 병원에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62세. 김씨는 올 1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가면서도 전화로 연출 지시를 하는 등 마지막까지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후쿠오카(福岡)에서 태어난 김씨는 게이오대 프랑스철학과에 다닐 때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그를 세상에 알린 첫 작품은 1974년 ‘아타미(熱海)살인사건’. 26세의 나이에 내놓은 이 작품은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희곡상을 휩쓸었다. 같은 해 ‘극단 쓰카 고헤이 사무소’를 설립하고 ‘초급혁명강좌 비룡전’ 등 히트작을 잇달아 내놓으며 80년대 초까지 ‘쓰카 붐’을 일으켰다.

사실 김씨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일본 연극은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에만 의존하는, 이른바 ‘가난한 연극’이 주류였다. 반면 김씨의 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속도가 빠르고 위트가 넘쳤다.

한·일 양국에서 활동 중인 공연기획자 기무라 노리코(47)씨는 “차별을 받아온 재일한국인 출신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김씨는 대중적 취향을 포착해내는 세련미와 인간의 악마적 속성을 파헤치는 통찰력을 동시에 갖췄다”고 평했다. “일본 연극계는 ‘쓰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한국이 일본에 준 선물” 등 김씨에게 쏟아진 일본 연극계의 칭송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12일 공개된 유언장에서 김씨는 "먼저 가는 이는 남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묘도 만들지 말고, 장례식도 추도식도 일체 안했으면 한다. 얼마간 지난 뒤 딸이 일본과 한국 사이 바다에 내 뼛가루를 뿌려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의 장녀는 여성가극단인 다카라즈카에서 아이하라 미카(愛原實花)라는 이름으로 활약하고 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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