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 보고 가세나] 14. 비구니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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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1984년 김지미(左)씨가 영화 '비구니' 촬영을 위해 삭발하는 모습. 오른쪽은 임권택 감독.

"스님들을 절대 욕되게 그리지 않을 겁니다. 믿어주십시오."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스님, '목적'을 위해 한 중생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겁니까? 이게 대승적인 불교가 가는 길입니까?"

"개인적으로는 미안합니다만 어쩔 수가 없군요."

1984년 5월 서울 화곡동에 있는 한 사찰의 주지 스님 방. 내 답답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당돌한 추궁에도 명우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미안하다. 개인적으로는 안 됐다고 생각한다"는 말만 벌써 네 번째 되풀이하고 있었다. 마당에 내리쬐는 늦봄의 햇살이 그렇게 무정할 수가 없었다.

달포 전 설악산 신흥사에서 김지미를 비롯한 여배우 30여명이 삭발식을 치르는 장면이 신문과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됐을 때만 해도 이런 호된 '신고식'이 기다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 이름으로 제작사를 차려 처음으로 만드는 영화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성공에 대한 예감으로만 들떠 있었다.

삭발식 1주일 뒤 조계종 총무원에서 '극영화 비구니 제작 중지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내왔을 때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장면을 손질해 다시 대본을 보여주면 괜찮으리라 낙관했다. 문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다면 진행되고 있던 촬영을 중단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충북 단양 수몰지구에 야외 촬영장을 짓고 한국전쟁 때의 피란민 행렬 등을 찍고 있었다.

'비구니'는 일엽 스님을 모델로 작가 송길한씨가 쓴 창작 시나리오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한 여성이 비구니가 되어 득도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불교를 대중적으로 이해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만큼 종단 입장에서는 제작을 마다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역풍이 드셌다.

조계종에서는 몇몇 부분이 불교를 모독하는 외설적인 장면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데리고 산길을 걸어 피신처를 찾아가던 주인공(수연)이 지나가던 트럭에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트럭 운전사가 대가로 몸을 요구하자 주인공은 콧방귀를 뀌고는 길을 계속 간다. 그러나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아이들이 발걸음 떼기를 점점 힘겨워 하자 앞서 가 기다리고 있던 트럭 운전사에게 몸을 허락하게 된다. 그녀는 차가운 얼음장을 깨고 더럽혀진 몸을 씻어보지만 계율을 어겼다는 자책감과 일시적으로 찾아온 성욕 사이에서 괴로워 한다. 불교계에선 주인공이 출가하기 직전에 사귀었던 애인과 꿈속에서 정사를 나누는 장면도 문제로 삼는 듯했다.

열흘 뒤 송 작가와 임 감독이 조계종을 찾아가 "영화는 대본만 봐서는 알 수 없다. 반드시 수준 높은 불교영화를 만들겠다"고 설명했지만 종단 측은 "불교의 성역을 영화화하는 자체를 반대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이 제목을 '수연 비구니'로 바꾸고 대본도 대폭 수정했지만 한번 돌아선 종단의 마음을 돌이키진 못했다. 마침내 5월 중순 동국대 비구니회 회원 28명이 영화제작 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민사법원에 제출하면서 공이 법정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앞에서 내가 비구니회의 정신적 지도자인 명우 스님에게 '목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명우 스님도 '개인적으로는 미안하다'고 했던 것은 사태의 근간에 영화 외적인 문제가 개입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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