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콜 '짝퉁'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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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내년 초 열릴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와 세계 최대 정보통신 전시회인 '세빗(CeBIT)'에서 삼성전자 애니콜을 찾기 힘들게 됐다. 삼성전자가 첨단 제품의 디자인과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극히 일부 제품만 출품하기로 29일 결정했기 때문이다.

세계 휴대전화기 업체들이 애니콜의 디자인과 기능을 베끼는 사례가 늘어난 데 따른 조치다. 실제로 최근 중국의 B사는 1000만대의 판매량을 올린 삼성전자의 '벤츠 폰'(모델명 SPH-E3200)을 그대로 모방한 제품을 중국 시장에 내놓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시회에 첨단 제품을 내놓은 뒤 실제 시장에 제품이 나오기까지는 보통 4~5개월가량 걸린다"며 "이 기간에 경쟁사들이 애니콜을 흉내낸 제품을 개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거세지는 애니콜에 대한 견제=애니콜의 공세를 견디지 못한 세계 최대 휴대전화기 제조업체 노키아는 지난 4월 말 돌연 제품 가격을 25% 내렸다. 같은 시기 일본 마쓰시타(松下)도 "북미 휴대전화기 시장에서 경쟁 상대는 삼성전자"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런 견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3분기 처음으로 세계 휴대전화기 시장에서 모토로라를 제치고 2위에 올라섰다. 시장점유율은 2분기보다 1.7%포인트 상승한 13.8%를 기록했다. 노키아의 가격 인하 공세로 모토로라가 타격을 받았다. 모토로라의 이 기간 시장점유율은 2.4%포인트 하락한 13.4%를 기록했다.

◆품질로 승부한다=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페루에서 온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이반 디보스 페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보낸 것이었다. 편지 내용은 이랬다.

그해 11월 말 페루를 방문한 모나코 왕세자 일행을 영접하기 위해 디보스 위원이 리마 국제공항에 도착해 승용차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 애니콜이 주머니에서 빠져 도로로 떨어졌다고 한다.

휴대전화기는 아스팔트 위로 튕겨져 나갔고 때마침 지나가던 대형 지프의 바퀴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나코 왕세자 일행과 통화할 수 있는 길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것은 물론 거는 것까지 정상이었다. 휴대전화기 화면만 망가졌을 뿐이었다. 삼성전자는 1996년 미국 스프린트사에 제품을 첫 수출하기 전 해인 95년 미국 전역을 돌며 24시간 제품 성능을 시험했다. 경쟁사 제품과 시간대와 장소를 나눠 성능을 비교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 시장 진출 8년만에 지난 2분기에 미국 휴대전화 시장을 석권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국내외 시장에서 모두 8600만 대의 휴대전화를 팔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수출 11조5000억원을 포함해 13조800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신제품 트렌드 주도=요즘 휴대전화기 시장의 주류인 카메라폰.MP3폰 등은 모두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이 결과 휴대전화기 고유 기능과 가격 경쟁력에 의존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고가 휴대전화기 시장을 삼성전자에 내줬다. 현재 세계 고가 시장의 삼성전자 시장점유율은 35%에 달한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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