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과 예술로 대화 나눈 韓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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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월드컵은 끝났지만, 한국 문화계는 공동 개최국 일본과 나눴던 여러가지 문화 교류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게 됐다. 해방 뒤 최대 규모였던 다양한 교류 행사들 가운데서도 미술 분야는 민·관을 포함해 가장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린동 아트센터 나비에서 열린 '월드 와이드 네트워크 아트:코리아 저팬 네트워크 아트 2002'는 그 뜨거운 현장이었다. 대부분의 교류전들이 완성된 작품만 왔다갔다 한 데 비해 이 전시는 한국과 일본의 두 공간을 직접 잇는 실시간 상호소통전으로 두 나라 관람객들을 하나로 묶었다.

작가들은 일본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로 손꼽히는 야마모토 게이고(66·교토 세이카대 교수)와 홍성철(33)씨로 세대를 뛰어넘어 통신과 예술을 융합하는 '브로드밴드 시대의 예술'을 보여줬다.'연결'을 주제로 내세운 두 사람은 인터넷으로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네트워크 아트'가 얼마나 큰 가능성을 지녔는지를 얘기했다.

야마모토는 디지털 프로세스에 의해 선으로 처리된 가상의 문을 만들고 일본 후쿠이시 아트 미술관 전시장을 연결한 쌍방향 통신으로 서로의 몸짓과 음향을 공유하는 '세계로 열리는 창'을 선보였다. 이 막 위에서 한국과 일본 관람객들은 만났고, 문살에 손을 댄 움직임은 소리로 변환돼 즉흥적인 합동 연주가 이뤄졌다. 이에 홍성철씨는 '인식의 거울'로 화답했다.

6천개의 실패로 구성된 막(거울) 위에서 실을 잡아당겨 인연의 끈을 만든 관람객들은 그 거울 속에 비친 또 다른 자아, 다른 관람객들과 관계를 맺으며 몸짓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험을 벌였다.

세미나를 곁들인 이날 전시에서 야마모토는 "오디오·비디오·컴퓨터를 하나로 묶어 예술로 승화시킨 백남준의 나라에 와서 작품으로 인연을 맺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고 "이런 공동작업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는 "이제 마우스 버튼 한 번 누르는 일이 예술이 되는 시대가 왔다"며 "지금 우리는 한 가정이나 책상 위가 미술관이 되는 세계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런 작업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험과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호기심으로 더 재미있다"며 미래를 이끌 젊은 세대들에게 이제까지의 유산을 전해주는 일이 자신의 과제라고 했다. 02-2121-0915.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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