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묶인 어선 3백여척 "꽃게 썩을텐데"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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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연평·백령·대청도 등 서해 5도 주민 7천여명은 서해교전에 따른 조업금지 조치로 30일 고기잡이에 나서지 못하자 착잡한 심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해군은 이날 새벽 서해 5도에 출어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 지역에서는 그동안 어선 3백10여척(연평도 70여척·대청도 1백20여척·백령도 1백20여척)이 출어해 꽃게와 우럭·놀래미 등을 잡아왔다.

주민들은 북한과 대치한 지리적 특성상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긴장 사태가 장기화하거나 북한이 또다시 도발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인천해경 산하 연평·대청·백령도 통제소에서 "해군이 해상 상황 등을 고려해 이르면 내일부터 조업을 재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밝히자 어민들은 하루빨리 조업금지 조치가 풀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연평도 당섬부두에는 어민들이 어선을 점검하고 어망을 손질하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저녁식사 후에는 월드컵 결승전을 시청하는 등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연평도 주민 1천3백60여명 가운데 80% 가량이 어선 67척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어 출어금지 조치가 길어지면 피해는 늘어날 전망이다. 하루 30t 남짓한 꽃게를 잡아 4억5천만~5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이틀째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또 꽃게를 잡기 위해 바다에 쳐 놓은 그물을 걷어 올리지 못한 채 1~2일만 더 지나면 그물에 걸린 꽃게가 모두 죽거나 썩을 가능성이 커 애를 태우고 있다.

연평도 어민회 부회장 최율(46)씨는 "꽃게 어획량이 예년의 50% 수준인 데다 그나마 출어를 못하니 어민들 사정이 오죽하겠느냐"며 "7월 1일부터 두달 동안 꽃게 금어기(禁漁期)여서 어망 철거 등 할 일이 많은데 작업이 늦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 유한석(43)씨는 "어민들의 소득원인 바다에 나가지 못해 타격이 큰 데다 북한이 다시 도발할까봐 걱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주민 1천4백여명 중 70%가 어민인 대청도 역시 1백20여척의 배가 이틀째 꼼짝 못하고 선진포 항구에 정박해 있다.어민들은 물때가 좋은 날이면 꽃게와 놀래미·우럭 등을 하루 60㎏씩 잡았으나 이틀 동안 집에서 소일하거나 어구를 손질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백령도는 주민 4천5백여명 가운데 10% 가량이 어민이어서 다른 섬보다 피해가 덜한 편이지만 어선 1백20여척이 있는 백령도의 어민들은 꽃게와 소라 채취 등으로 하루 20만~30만원씩 올리던 수입이 끊기자 울상을 지었다.

한편 운항이 중단됐던 인천과 백령·연평도 항로 여객선들은 30일 오후부터 운항을 재개했다.

오후 1시 백령아일랜드호와 데모크라시호가 발이 묶여 있던 여행객 2백30명과 2백60여명을 태우고 백령도를 떠나 인천항에 도착했으며, 같은 시각 승객 1백50여명을 태우고 인천을 떠난 실버스타호는 오후 5시40분쯤 연평도에 도착했다.

연평도=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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