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제2부 薔薇戰爭 제4장 捲土重來 : 전쟁엔 聖이 아니라 勝이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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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그러자 김양이 대답하였다.

"아찬 나으리. 그때 태흔 형은 낭혜화상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나이다. 그럼 풀잎 세 개로 제가 무엇을 이룰 수 있겠나이까. 그러자 화상이 무어라고 대답하신지 아시나이까."

김우징은 대답하였다.

"그것을 내가 어찌 알 수 있단 말이오."

기다렸다는 듯 김양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낭혜화상은 태흔 형에게 풀 셋을 통해 성(聖)을 이룰 수 있다 하였나이다. 낭혜화상은 태흔 형에게 '그대는 반드시 무성히 우거진 초목을 거쳐서 성을 이룰 것이다'라고 참언하였나이다. 그러니 나으리, 비록 풀이 우거진다 하여도 그것이 어찌 승(勝)을 이룰 수 있겠나이까. 풀이 우거져봐야 초두로(草頭露), 즉 '풀잎에 맺힌 이슬'이 아니겠나이까. 또한 '성(聖)'이란 덕이 밝은 성현을 가리키는 말인데, 전쟁에 있어서는 반드시 이길 '승(勝)'이 필요한 것이지, '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지 않겠나이까.'성'이란 '불(佛)'에서만 추구하는 것이니, 태흔 형은 반드시 이번 전쟁에서 '초목구후'할 것이나이다."

초목구후(草木俱朽).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허무하게 초목과 함께 썩어 죽어간다'는 뜻으로 김양은 종부형의 운명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찬 나으리."

김양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하였다.

"싸워보나마나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신이 말씀드리는 것이나이다. 하늘로부터 풀의 운명을 점지 받은 사람이 어찌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풀잎을 통해 부처를 이룰 수 있다면 몰라도."

"그러하면."

비로소 김양이 크게 웃은 이유를 알아낸 김우징이 다시 물어 말하였다.

"한 가지만 더 묻겠소. 그렇다면 그대의 운명은 무엇이오. 낭혜화상이 찾아간 두사람에게 한사람에게만 참언을 내리고, 나머지 한사람에게는 참언을 내리지 않았을 리는 없을 것이 아니겠소. 그대의 종부형 김흔 공이 풀 셋을 통해 성을 이룰 수 있다 하였으면 그대의 점괘는 과연 무엇이오."

그러자 김양은 다시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나서 말하였다.

"불행하게도 낭혜화상은 신에게는 점괘를 내리지 아니하셨나이다."

"어찌하여 그렇소이까."

"그 무렵 신의 나이 열세살이었나이다. 미래를 점쳐보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 하여서 화상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았나이다."

과연 그러하였음일까. 낭혜는 김양에게 나이가 어리다고 미래를 점쳐주지 아니하였음일까.

그때 낭혜는 화랑 관창을 빗대어 항의하는 김양에게 전혀 뜻밖의 점괘를 점지해 주지 아니하였던가. 세 명의 계집(女), 즉 간(姦)을 통해 세(世)를 얻을 수 있다는 참언을 내리지 아니하였던가.

그때 낭혜화상이 두 형제에게 내린 참언은 그러니까 김흔은 풀잎 세 개를 통해 성불(聖佛)을 이루며, 김양은 계집 셋을 통해 '권세(權世)'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김양은 낭혜화상이 내린 이 점지를 그 누구에게도 입을 열어 발설해 본 적이 없었다.

세 명의 계집.

권세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세 명의 계집. 그 첫번째는 김우징의 신임을 얻기 위한 아내 사보의 죽음이었다. 그 두번째는 장보고의 딸 의영과 김우징의 아들 경응과의 혼약을 맺음이니, 나머지 남은 하나의 계집은 과연 누구를 말함이며, 어떤 사건이 생길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이 비밀이 풀릴 때까지 김양은 그 누구에게도 천기를 누설치 않기로 굳게 맹세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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