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살 땐 500만 달러짜리 기업 팔 땐 75억 달러짜리 ‘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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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이야기
데이비드 A. 프라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흐름출판 502쪽, 2만3000원

픽사(PIXAR). 1986년생. 화소를 뜻하는 ‘픽셀(Pixel)’과 예술을 뜻하는 ‘아트(Art)’를 뭉뚱그려 이름을 붙였다. 아홉 돌이 되던 1995년,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성공 시키면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대표 주자이자, 21세기형 창조 기업의 대명사가 됐다. 그간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등 알만한 애니메이션이 죄다 픽사의 손을 거쳤다.

다시 한번 일러둔다. 이름이 픽사다. 화면의 입자를 촘촘하게 빚어내는 ‘기술’과 스토리를 창조하는 ‘예술’이 적절히 들어앉은 이름이다. 여기에다 픽사를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성장시킨 경영 스토리까지 맞물리면, 얼추 그림이 완성된다. 픽사는 기술과 예술과 경영이 스미고 짜이면서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 책은 창의력과 기술력, 그리고 경영 능력이 어우러진 한 미래형 기업의 성장사를 그리고 있다.

픽사는 70년대 후반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꿈꾸던 한 청년의 패기로 시작됐다. 맨 처음엔 ‘픽사’란 이름조차 없었다. 74년 에드 캣멀(현 픽사 CEO)이 뉴욕 공과대학에 컴퓨터 그래픽스란 연구소를 세운 게 시초다. 차고를 개조한 이 연구소에서 캣멀은 자신과 비슷한 꿈을 꾸는 이들을 불러모았다.

캣멀의 연구소는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을 제작한 조지 루카스 필름과 손을 잡았다. “미친 발상”이라고 조롱 받던 컴퓨터 애니메이션 기술은 점차 나아졌지만, 문제는 예술성이었다.

이 때 합류한 이가 존 래스터(현 월트디즈니 최고 창작책임자)다. 래스터는 당시 디즈니사에서 막 해고 당한 상태였다. 그는 단편 애니메이션 ‘룩소 주니어(1986)’를 발표하며 픽사의 기술력에 스토리 텔링을 강화한 창의력을 보태기 시작했다.

‘아이폰’으로 유명한 스티븐 잡스(현 애플 CEO)는 픽사의 경영을 뒷받침 했다. 86년 애플사에서 밀려난 그는 조지 루카스의 컴퓨터 사업부를 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때부터 ‘픽사’란 이름을 붙이고 10년간 500만 달러의 열배가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잡스의 끈질긴 투자와 경영 능력이 아니었다면 ‘토이 스토리’와 같은 혁신적인 애니메이션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훗날 애플 CEO로 복귀한 잡스는 2006년 픽사를 디즈니에 75억 달러에 넘겼다. 20년간 무려 1500배의 성장을 이룬 셈이다.

이 책은 기술과 예술과 사업이 조화를 이룬 한 기업의 전기(傳記)다. 창조와 혁신이 기업의 명운을 결정짓는 시대에 두고두고 참고할 만한 책이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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