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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戰 최대의 敵은 '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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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월드컵 4강행 티켓을 따내기는 했지만 22일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한국 축구 대표선수들의 몸놀림은 눈에 띄게 둔했다. 스페인 선수들이 위험 지역으로 파고들 때마다 두세명이 둘러싸 공을 뺏어내는 등 대표팀 특유의 압박은 여전했다. 그러나 선수들의 몸놀림은 포르투갈전이나 이탈리아전에서처럼 가볍지 않았다.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텨내는 듯했다.

이탈리아전에서 왼쪽 발목을 접질렸던 김남일은 이 경기에서 약해진 발목을 또 다쳐 결국 교체되고 말았다. 유상철의 컨디션도 상당히 안좋았고, 안정환은 순발력이 많이 떨어져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 가 있지 못하는 장면도 자주 목격됐다.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은 18일 이탈리아전에서 연장전까지 치르며 1백17분간 혈투를 벌인 후유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표팀의 김현철 주치의는 "사흘 쉬는 정도로는 피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스페인전에 나설 때 선수들의 체력은 거의 고갈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선수들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체력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이탈리아전 직후 탈진상태에 빠져 응급처치를 받았던 최진철은 "독일전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일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다시 몸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고, 홍명보는 "사기는 더욱 높아졌지만 체력적으로는 많이 지쳤다.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요코하마행 결승전 티켓을 결정짓는 25일 독일전에서는 대표팀의 체력 회복 정도가 승부를 가름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두 경기 연속으로 연장전 사투를 치러 체력 소모가 극심한 데다 휴식일마저 스페인전 때에 비해 하루가 더 적은 이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21일 8강전을 치른 독일은 미국의 호된 공격에 고생하긴 했지만 연장전까지 가지는 않았으며, 휴식일도 한국에 비해 하루가 더 길다. 경기 당일 만약 비라도 온다면 선수들의 체력 소모는 더 커진다.

연장 대접전으로 인한 피로를 푸는 데 필요한 회복시간은 전문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본다.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 전문의 박원하 교수는 "축구의 연장 접전으로 인한 피로 정도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과 맞먹는다는 일부 분석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조깅으로 치면 쉬지 않고 2백분을 뛴 정도, 마라톤으로 치면 하프코스를 완주한 정도의 운동량쯤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수들이 뛴 거리는 13~15㎞ 정도로 이틀간 충분히 휴식하면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그러나 "축구 같은 격한 운동에서는 몸끼리 부딪쳐 생기는 타박상이 없을 수 없고, 타박상과 결합된 근육피로를 회복하는 데는 이틀로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한국 선수들보다 하루 더 쉬는 독일 선수들은 피로 정도를 나타내는 근육 내 젖산 농도가 25일까지는 정상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지만 한국 선수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김현철 주치의는 "선수들의 체내에 쌓인 젖산을 몸 밖으로 내보내 체력을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5일 이상이 필요하다. 때문에 한국 선수들은 독일전에서 스페인전 이상으로 체력적인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여러가지 조건에서 한국이 독일보다 불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정이 빡빡한 월드컵에서 독일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반전을 무사히 잘 넘기면 후반전에는 독일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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