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후보가 풀어야 할 과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6·13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둘러싼 민주당 내 갈등은 외견상 정리됐다. 어제 당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후보 자격을 재신임받았고, 한화갑 대표가 이끄는 최고위원들도 책임론에서 벗어났다. 회의는 반(反)후보 쪽 일부가 '인책론'을 주장했지만 친노(親) 주류세력의 밀어붙이기가 주효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강공에는 "당을 떠날 사람을 붙잡아야 소용없다"는 반노 쪽에 대한 심각한 불신이 깔려 있다. 때문에 수습의 가닥은 잡았지만 내분의 불씨가 잠복돼 있는 만큼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DJ정권 부패에 대한 반성과 쇄신의 소리가 당을 지배할 것이라는 여론 기대와 달리 권력투쟁으로 당내 논란이 마무리된 것도 수습의 효험을 떨어뜨리고 있다.

새 출발하는 후보가 "8·8 국회의원 재·보선 승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의 회복"이라고 판단한 것은 적절하다. 문제는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얼마만큼 정확하게 읽고 거기에 부응하느냐는 점이다. 지방선거에서 후보는 당의 참패에다 자신의 지지율 하락이라는 2중의 고통을 맛봤다.

권력부패와 3金정치 결별 문제를 놓고 의리와 차별화 사이에서의 엉거주춤, 국민통합을 내세우면서도 이념 편향적인 외침,'깽판'발언 등 그의 정치행태는 선거 중 국민 사이에 논란거리였다. 후보가 50일 뒤 재·보선을 유쾌한 반전(反轉)의 승부수로 삼겠다면 이런 문제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변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당내 반노 세력을 자기 쪽으로 다시 끌어내 당을 자신의 체제로 흔쾌하게 전환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후보의 재신임 문제는 대선 전략 측면에서 찬반 의견이 부닥칠 수 있다. 그러나 최고위원들이 거기에 적당히 기대 책임론에서 벗어난 것은 궁색하다. 선거 참패가 내 탓이라며 사표를 던진 최고위원들이 한 명도 없는 것이 민주당의 왜소한 모습일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