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좀 망가지면 어때? 주름살에 기죽지 않는 여자, 캐머런 디아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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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특히 톰 크루즈와 주연한 ‘나잇&데이’에서 그녀는 불혹을 앞둔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와일드한 격정 액션을 보여준다. ‘액션 실험’이라 해도 좋을 오토바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왜 줄리아 로버츠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출연료) 2000만 달러 클럽’ 멤버가 됐는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금발에 파란 눈, 롱다리는 그녀를 전형적인 이미지에 가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흔을 앞두고 여전히 연기욕심을 불태우고 있는 캐머런 디아즈의 승리는, 그런 이미지를 거부한 데서 온 것이다. 장쾌한 이단옆차기를 날리고 트림을 서슴지 않는 피오나 공주는 그녀에게 단단한 여성성을 부여해줬다. 생맥주와 햄버거를 앞에 둔 채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친근함은 다수의 로맨틱 코미디와 액션물을 통해 망가지길 두려워하지 않았던 결과다. 대체 누가 그런 그녀에게 주름살 운운할 것인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준은 이런 사랑이 자신에게 찾아올 거라곤 한 번도 생각 못 했다. 원래 사랑이 그렇잖은가. 누구와 사랑에 빠질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게 운명인지 아닌지 수수께끼다. 그런 게 인생의 가장 큰 묘미이기도 하고.”

캐머런 디아즈가 소개하는 ‘나잇&데이’의 준 헤이븐스는 평범한 여자다. 자동차 복원 전문가라는 직업이 다소 특이할 뿐, 청바지에 셔츠를 걸쳐 입은 모습이 수수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여동생 결혼식에 가려고 비행기를 탄 그녀가 일생일대의 모험에 휘말리게 된다. 차세대 에너지원을 훔쳤다는 이유로 조직으로부터 쫓기는 CIA 요원 로이 밀러(톰 크루즈)를 만나게 되면서다. 그녀 삶에서 처음으로 두 가지 발견이 이뤄진다. 하나는 낯선 남자와의 사랑, 다른 하나는 피 안에 끓고 있던 모험 본능이다. 위에서 ‘사랑’을 ‘배역’으로, ‘인생’을 ‘배우라는 직업’으로 바꿔보라. 이 또한 산뜻하게 들어맞는다. ‘나잇&데이’의 준은 ‘미녀삼총사’ 시리즈 이후 잠자고 있던 그녀의 몸속 액션 본능을 재확인시켜준 작품이다. 그런 걸 확인하는 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묘미다.

자메이카·오스트리아·스페인·카리브해 등 전 세계를 누비며 모험을 펼치는 이 영화에서 디아즈는 톰 크루즈와 함께 대역과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을 빌리지 않는 리얼 액션을 보여줬다. 촬영장엔 CG 작업을 위한 블루 스크린(서로 다른 장면을 합성할 때 사용하는 배경)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액션 중 백미는 스페인 세비야의 뒷골목에서 황소 떼를 피해 달리는 오토바이 장면. 질주하는 오토바이에서 로이의 뒷자리에 타고 있던 준이 갑자기 앞자리로 바꿔타며 로이와 마주보는 장면은, 아찔한 속도감과 함께 에로틱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사람들이 모두 걱정했다, 우리가 크게 다칠까 봐. 내가 긴장을 풀라고 했다. 그런 장면을 찍을 땐 절대로 겁내면 안 된다. 정말 섹시하고 신나고 재미있었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핸들을 잡은 사람이 톰 크루즈가 아니었다면 절대 타지 않았을 거다.” 두 사람이 마주보던 순간을 회상하는 톰 크루즈의 말이 재미있다. “그 순간 우린 서로 ‘(너무 무섭고 떨린 나머지) 대체 CGI(컴퓨터그래픽 화면)는 어디 간 거야?’라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1966년산 GTO를 타고 180도 회전과 전속력 질주하는 장면도 손수 해냈다. 제작진이 “자동차 추격전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에 출연해도 될 정도”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정도. 멍과 베인 상처, 붓기가 촬영 기간 내내 따라다닌 건 당연지사였다. 촬영 도중인 올 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했던 그녀는 우아한 레드 드레스 차림이었지만 부어오른 멍든 팔은 숨길 수 없었다.

그녀가 액션스타로서 각광을 받았던 건 사실 한참 전의 일이다. 현란한 동양무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미녀삼총사’ 시리즈만 해도 2000년과 2003년 얘기이니. ‘미녀삼총사’ 2편 ‘맥시멈 스피드’를 찍으며 디아즈는 “누군가의 얼굴을 발로 차거나 무릎을 찢어놓으려면 엄청난 양의 훈련이 필요하다. 힘들지만 그런 극도로 육체적인 작업을 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즐거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러닝머신과 필라테스로 다진 탁월한 운동감각은 유명하다.

‘나잇&데이’의 준이 그간 출연했던 로맨틱코미디와 액션물 속 이미지의 총합체에 가깝다면, ‘슈렉 포에버’의 피오나 공주는 현실 속 여배우의 모습과 닮아 있다. 2007년 ‘슈렉3’ 개봉에 맞춰 내한했을 때 그녀는 “피오나는 강인하면서도 힘 있는 현대적 여성이라 맘에 들었다. 실제 내 모습과 닮았다”고 스스로도 고백했다. 어렸을 적부터 록음악의 굉음을 사랑했고 스쿠버다이빙·승마·롤러블레이드를 즐기던 왈가닥 소녀가, ‘멍청한 금발 미녀(bimbo)’의 이미지에 갇히지 않기 위해 데뷔 이후 신중하게 출연작을 고르던 다부진 면모가 겹쳐지는 대목이다. “돈은 벌 만큼 벌었다. 난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산다”고 야무지게 말했던 모습도 떠오른다.

‘슈렉 포에버’에서 피오나 공주는 다시금 변신을 꾀한다. 못된 마법사 럼펠이 접수한 겁나먼 왕국을 되찾기 위한 지하조직의 리더다. 왕관은 칼과 도끼로, 드레스는 가죽조끼와 전투복으로 바뀌었다. 마법이 풀려도 여전히 괴물인 모습이 맘에 쏙 들었던 것처럼, 이번 모습도 그녀에겐 각별했다. “피오나가 힘주면서 걷는 걸음걸이가 좋다. 마치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난 나쁜 여자다, 날 갖고 놀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여성스럽다. 피오나는 험악한 전사가 아니라 능력 있는 여성의 상징이다.”

사실 ‘미녀삼총사’ 이후 ‘마이 시스터즈 키퍼’(2009년)와 ‘로맨틱 홀리데이’(2006년) 외엔 스크린 나들이가 뜸했다. “파파라치와 스캔들을 피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해마다 평균 2편의 박스오피스 히트작을 내놨던 과거를 떠올릴 때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 점에서 ‘슈렉’ 시리즈는 이 능력 있는 여배우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다. 요즘 극장을 메우는 10대와 20대 관객에겐 ‘캐머런 디아즈=피오나 공주’로 통하니까. 피오나 공주와 함께 그녀는 아홉 살의 나이를 더 먹으며 함께 성숙했다.

“1편에서 탑에 갇힌 어린 공주일 뿐이었던 피오나는 네 편을 통해 성장했고, 책임감을 갖게 됐고, 멋진 엄마이자 아내·딸이 됐다. 괴물로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헌신했다. 피오나는 ‘슈렉’ 시리즈의 정신적 지주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난 그 과정을 다 지켜봤다. 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게 정말 슬프다.”

글= 기선민 기자사진 및 자료=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주요 출연작

2010년 나잇&데이/슈렉 포에버 3D

2009년 마이 시스터즈 키퍼

2007년 슈렉3

2006년 로맨틱 홀리데이

2004년 슈렉2

2003년 미녀 삼총사2-맥시멈 스피드/갱스 오브 뉴욕

2002년 피너츠 송

2001년 바닐라 스카이/슈렉

2000년 미녀 삼총사/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1999년 베리 배드 씽

1998년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1997년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필링 미네소타

1994년 마스크

[시시콜콜] 캐머런 디아즈

자유연애주의자에 지각대장, 돈 많이 벌어 기네스북에도 올랐죠

1972년 8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쪽으론 영국과 독일, 어머니 쪽으론 쿠바와 미국 인디언의 피가 골고루 섞인 혼혈 미인이다. 모델 발탁은 열여섯 살 때. 나이를 속이고 들어간 할리우드의 한 클럽에서 모델회사 간부의 눈에 띄었다. 스크린 데뷔도 드라마틱했다. 연기 경험 전무의 ‘초짜’가 94년 짐 캐리가 주연한 ‘마스크’ 오디션에서 금발 미녀 티나 역을 따냈다. 이 작품 하나로 모델에서 영화배우로 단숨에 분야를 갈아탔다.

배우로서 각오도 다부졌다. ‘마스크’ 이후 1년여를 잠수 탔다. “사람들은 내게 연기력보다 얼굴과 몸매를 원하지만, 난 내 안에 있는 다른 여자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유로. 끈기는 보상받았다. 남편될 사람의 동생(키애누 리브스)과 맺어지는 ‘필링 미네소타’, 풋풋하고 상큼한 면모를 재확인시켜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등을 거치며 그녀는 ‘골 빈 금발 미녀’ 외에도 여러 얼굴이 있음을 각인시켜줬다.

4년 후인 98년 첫 홈런을 쳤다. ‘엽기녀’라는 말을 처음으로 유행시킨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였다. 머리에 헤어젤 대신 정액을 바르고 해맑게 웃는 메리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후 숱한 로맨틱 코미디에서 등장한, ‘정신없이 망가지는 예쁜 여자’는 모두 메리를 변주한 것. 이후 ‘미녀삼총사’ ‘슈렉’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그토록 원하던 거장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의 낙점도 받아 ‘갱스 오브 뉴욕’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호흡을 맞췄다.

2003년엔 줄리아 로버츠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여배우(4220만 달러)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동료 배우 매트 딜런과 3년간 교제했고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열애 끝에 헤어져 지금은 공식적인 싱글이다. 최근 “일부일처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던 자유연애주의자. 자기 관리엔 다소 소홀하다는 평. 먹성이 좋아 만성적인 피부 트러블에 시달리며 ‘지각대장’으로도 유명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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