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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어린 학생들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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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공통적으로 내건 공약이 무상급식 전면 확대와 학생인권조례의 도입이었다. 무상급식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마다 예산 부족으로 차질이 불가피한 게 현실이다. 서울시만 해도 현행 저소득층 급식비 지원 예산의 열 배도 넘는 재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 그러다 보니 다들 예산이 안 드는 학생인권조례부터 밀어붙이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어제 전교조를 주축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이하 서울본부)를 발족한 것도 이들 교육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곽노현 교육감이 있는 서울을 시작으로 여타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곽 교육감이 추진하는 조례안은 지난해 경기도 교육청이 마련한 안을 기초로 했다고 한다. 체벌 금지, 두발 및 복장의 자유, 야간 자율학습 선택권 부여, 수업시간 외 집회·결사의 보장 등이 골자다. 이들 항목 하나하나가 우리 교육 현실에서 적잖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의 우려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인권조례 제정을 빌미로 학생들을 이념 투쟁, 정치 투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듯한 행태다. ‘서울본부’ 측의 참여 제안서에 ‘인권은 학생이 정치의 주체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 구실을 한다’ ‘2008년 촛불을 연 주역은 바로 10대 청소년들이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만 봐도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라도 아직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을 추악한 정치판 싸움에 끌어들여 ‘홍위병’ 노릇을 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곽 교육감의 취임식 현장에 여중생을 불러 “일제 고사를 없애달라”는 축사를 하게 하고, ‘서울본부’ 발족식에 굳이 청소년 인권단체를 불러내 포함시킨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주장을 하는 청소년들을 골라 들러리 세우는 모양새니 말이다.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장치는 조례 외에도 많다. 굳이 인권조례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2년 전 광우병 사태 때처럼 철없는 아이들을 정치의 도구로 이용하는 비교육적 행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