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아름다워] 국제 시장 뛰어든 '노뜰 단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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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2월 말 호주 정부 초청으로 애들레이드 아츠 마켓을 방문했을 때다. 서울을 떠난 지 꽤 된 시점이라 집 생각이 간절할 무렵 이역만리에서 참 반가운 친구들을 만났다.

극단 노뜰 원영오 대표와 단원들, 프로듀서 이규석(서울프린지페스티벌 집행위원장)씨였다. 작품을 팔러 소리 소문 없이 이 아츠 마켓에 온 터였다. 한국 단체로는 첫 참가. 이들은 오전 시장이 열리면 외국 바이어들에게 작품을 파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짧은 영어는 문제가 아니었다. 1970년대 이쑤시개 하나라도 팔려고 외국을 누비던 종합상사원들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상담을 마치면 근처 애들레이드 대학 공연장으로 가 브레히트 작품을 각색한 연극 '귀환'을 공연했다.

단원들은 콘도를 빌려 숙식을 해결했다. 콘도에는 서울서 올 때 가져온 라면상자 등 부식품이 널려있었다. 식사 준비는 남녀 구분 없이 당번을 정해 했고, 빨래는 각자 알아서 했다. 함께 고생하며 함께 벌어 함께 나누는 공산(共産)적인 조직체가 극단 노뜰이었다.

이러면서 이들은 세계로 뻗어가고 있었다. 고생을 고생인 줄 모르는 한국 연극 파이어니어의 대견한 모습을 나는 애들레이드에서 눈으로 확인했다. 비교적 일찍 이들을 발굴해 언론에 소개했던 나로서는 감회가 새로웠다.

극단 노뜰은 1990년대 중반 강원도 원주에서 연출가 원영오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무명의 이 지방극단을 일약 연극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각인시켜준 것은 2001년 아비뇽연극제 오프에 '동방의 햄릿'을 출품, 현지 언론에서 극찬을 받으면서부터다. 대담한 시도에 결과도 만족이었다.

21세기 한국 연극의 노마디즘(유목정신)을 실현하고 있는 이 극단이 지난 크리스마스날 원주 문막 후용리 옛 후용초등학교 폐교 안에 자체극장 '후용공연예술센터'를 열었다. 세계로 뻗는 노뜰 연극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이날 이를 가장 기뻐한 사람들은 이들의 영원한 연극적 동반자인 동네 사람들이었다.

연극이라는 '노동의 뜰'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는 노뜰 단원에게서 한국 연극의 밝은 미래를 발견한다. 문화예술계로 흘러온 로또복권기금이 근사한 열매 하나를 맺었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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