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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400년'전 랭스미술관 리오 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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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다비드 리오(45)

▶ 앙리 마티스가 1946년 77세에 제작한 가위 그림 '재즈-어항에서 수영하는 여자'. 선과 색의 충돌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서양미술 400년-푸생에서 마티스까지'는 서구미술사를 정통으로
가르쳐주는 교육적인 전시다. 17~20세기 유럽의 미술계 판도를 선
(線)과 색(色)의 논쟁으로 선명하게 정리했다. 형태를 탄탄한 선으로 묘사하는 이성파와 화면을 색의 향연으로 흐드러지게 한 감성파가 지난 400년 서양 화단의 두 뼈대였음을 88명 작가의 문제작 119점으로 보여준다. 이런 묵직한 주제의 '서양미술 400년' 전(2005년 4월 3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꾸린 이는 프랑스 랭스미술관의 다비드 리오(45·사진) 관장이다. 2년 전 '밀레의 여정' 서울 전으로 한국과 연을 맺은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날아온 김에 연말까지 경주와 남도 등을 둘러보며 한국미를 두루 맛보겠다고 즐거워했다.

-선과 색의 대립 구도로 서양미술사를 꿴 기획력이 돋보인다.

"명화를 진품으로 보는 정도의 순회전은 이제 뜻이 없다. 서양미술이 흘러온 껍데기보다는 속 짜임새를 감상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17세기 이래 서양 화단에서는 선과 색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양새가 되풀이돼 왔다. 한마디로 선이 정신이고 이성이라면 색은 마음이고 감성이다. 선과 색의 흐름만 제대로 이해하고 볼 줄 안다면 서양미술사를 덩어리째 소화한 셈이 된다. 교과서를 외우면서 배우기보다 이런 전시를 즐기면서 눈과 가슴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상징적인 작품인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미술관에 소장된 뒤 처음 바깥 나들이라는데.

"보존과 운반이 조심스러워 그동안 해외에 나간 일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선과 색'이라는 전시 주제를 한 눈에 보여주는 작품이라 결단을 내려야 했다. 수직과 수평의 고전적인 선적 구도나 20세기 미니멀리즘을 떠오르게 하는 추상적 배경 등이 전시의 얼굴과 같은 작품이다. 한국 쪽의 지원으로 복원 작업을 마쳤고 서울에서 첫 외국전을 치르게 돼 기쁘다."

-미술관장으로서 가장 힘을 쏟는 일은 무엇인가.

"미술관의 문턱을 넘은 관람객을 기쁘게 하기다. 특히 어린 관람객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전시장, 즐기면서 배우는 미술관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다. 모네가 말년에 그린 대표적인 연작 '수련'을 예로 들어보자. '수련'을 거죽으로만 보면 인상파의 특징이라 할 색채의 떠다님밖에 안보인다. 그러나 '수련'의 물 밑으로 들어가면 모네가 평생 추구했던 영혼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림 속으로 마음을 열고 들어가 화가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평생 그들의 삶을 받쳐줄 큰 재산이 될 것이다."

-조형 실기와 미술사 이론 양쪽을 전공했고, 복원학까지 익힌 이력이 미술관장으로 맞춤한데 미술관 일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이라면 무엇을 들겠나.

"열린 마음이다. 예술은 세상과 인생을 향해 마음과 영혼을 여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그렇게 자유롭고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걸작과 졸작을 가르는 잣대 또한 이 자유혼 아닐까."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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